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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약사

작성자
주스위스대사관
작성일
2011-02-25

 

Ⅱ. 약  사


 1. 고대·중세


    ㅇ 현재의 스위스 영토에서 신석기 시대와 농경시대의 자취가 발견되기는 하였으나, BC 15세기경에 스위스의 조상이라 할 켈트족의 헬베티아인들이 남부 독일에서 남하하여 스위스 중부 고원지대에 거주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됨.

    ㅇ 그 이후 헬베티아인은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프랑스 동쪽에서 당시 줄리어스 시저가 이끄는 로마군과 충돌하여 패하고 다시 스위스 중부고원으로 후퇴하였으나, 기원전 58년에 로마제국에 흡수되어 서기 400여년까지 로마제국의 속국으로 지배를 받으면서 경제가 활성화되고  도로와 마을이 건설됨.

    ㅇ 455년 게르만 민족 이동시에 알레마니족이 스위스 북부에, 로마화된 부르군트족은 서부에, 랑고바르트족은 남부에 정착하여, 스위스의 현재와 같은 독일어권, 불어권, 이태리어권, 로망슈어권의 언어별 지역경계가 생겨남.

    ㅇ 6세기에 스위스는 프랑크제국의 일부가 된 후, 9-12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남.북유럽을 잇는 상업의 요충지로 발전함.

    ㅇ 13세기 신성 로마제국의 몰락이후 합스부룩(Habsburg) 왕가의 통치를 받으면서, 자유도시의 등장과 더불어 시민계급이 대두되고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함.


 2. 스위스 동맹 및 연방국가 탄생

   ㅇ 1291.8.1 Uri, Schwyz, Unterwalden 3개 지역이 뤼트리(Rutli)에서 단합하여 원형 칸톤(Ur-Kantone)을 형성, 당시 강력한 합스부룩 왕가의 영토확장 요구에 공동으로 대항하면서 사법행정의 자치권 보호를 위해서 동맹하여 서약을 맺은 바, 이것이 최초의 스위스 동맹 (Swiss Confederation)의 시초가 됨.

   ㅇ 이후, 1332년부터 1513년까지 아래 10개주가 스위스 동맹에 가입함.

      - 1332년 Luzern주 스위스 동맹 가입

      - 1351년 Zurich주 스위스 동맹 가입

      - 1352년 Glarus, Zug주 스위스 동맹 가입

      - 1353년 Bern주 스위스 동맹 가입

      - 1481년 Fribourg, Solothurn주 스위스 동맹 가입

      - 1501년 Basel, Schaffhausen주 스위스 동맹 가입

      - 1513년 Appenzell주 스위스 동맹 가입

   ㅇ 1803년 St. Gallen, Grabunden, Thurgau, Ticino, Aragau, Vaud주 6개주가 스위스 동맹에 가입하고, 다시 1815년 Valais, Neuchatel, Geneve주 3개주가 스위스 동맹에 가입, 25개 주가 스위스 동맹에 가입하면서 현재의 국경을 확보함.

      ※ Unterwalden, Basel, Appenzell주는 각각 2개주로 분리되었음.

   ㅇ 1874년 헌법 개정으로 25개주 연방공화국을 채택, 스위스 동맹이 연방국가로 발전하면서 국민투표제가 도입되고,  근대 독립국가로 출발함.

   ㅇ 1978년  Jura 주가 Bern 주에서 분리되어 현재의 26개주가 성립됨.


 3. 근 대

   ㅇ 17세기 카톨릭 주와 개신교 주간의 종교내분, 민주주의 정체와 귀족주의 주 간의 내전이 발생하였으나, 대외적으로는 유럽내 30년 전쟁(1618-1648)에 개입하지 않았으며, 이것이 향후 스위스 중립정책의 기초가 됨.

   ㅇ 1648년 30년 전쟁을 종결짓는 베스트팔리아(Westphalia) 조약에 의해 대외적으로 독립국가로 인정받았으며, 대내적으로는 신.구교의 이원화 전통이 확립됨.

   ㅇ 1798년 나폴레옹은 스위스를 Confederation Helvetica로 국명을 부여하고 혁명정부를 수립, 모든 봉건적 특권을 폐지하고 종교, 문화와 언론의 자유를 부여함. 그러나, 나폴레옹 몰락이후 헬베티아 혁명정부도 쇠퇴함.

   ㅇ 1812년 스위스 연방은 대내외적으로 중립국을 선언하였으며, 1815년 비엔나 회의에서 최초로 국제사회로부터 영세중립국 승인을 받음.

   ㅇ 1830년 프랑스 혁명이 영향으로 스위스 여러 주에서 공업화된 주들이 신교로 전향하면서 자유.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게 되자, 구교세력은 이에 반발하여 “분리동맹”을 결성했고, 결국 1847년 보수.카톨릭 세력과 자유.진보 신교 세력간 충돌, 내란이 일어나고, 신교측이 승리함.

   ㅇ 1848년 신구교간 화해가 이루어져 새로운 연방헌법이 국민투표에 의해 제정되어 베른을 연방수도로 정하고 연방정부와 양원제 의회를 채택함.


 4. 현 대

   ㅇ 1959.2.1 Vaud주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후, 1971년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국민투표가 통과 되었으며, 1989.4.30 Appenzell주가 스위스주에서 마지막으로 여성투표권을 부여함.

      - 1999년  Ruth Dreifuss,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

   ㅇ 1959년 처음으로 사민당, 자민당, 기민당은 각각 2명의 연방장관을 국민당은 1명의 연방장관을 배정받아 4대정당의 연립내각이 구성되었으며, 이러한 정당별 연방장관 배정비율은 Magic Formula로 불리면서 2003년 총선까지 44년 동안 유지되어 옴.

   ㅇ 1992년 국민투표에서 스위스의 유럽경제지역(EEA : European Economic Area; EU가입 전단계) 가입이 부결됨.

   ㅇ 냉전시대 스위스는 중립국으로서의 안정과 번영이라는 혜택을 누렸으나, 냉전이 끝나고 이러한 혜택이 줄어들면서, 지역분쟁, EU확대로 인한 국가간 국경폐쇄, 동구권 난민유입, EU로부터의 경제적 고립으로 인한 국가적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점차 팽배해지고 이로 인한  정당간 의견분화, 진보와 보수간의 양극화 경향을 보이게 됨.

   ㅇ 2002.9.10 유엔에 공식 가입함. 유엔가입 국민투표가 1986년에는 75%의 반대로 부결되었으나, 2002.3.3. 국민투표에서 찬성 54.6%로 통과됨.

   ㅇ 2003.10월 총선에서 보수우파인 국민당이 국민들 가운데 조성된 위기감 및 보수화, 민족주의에 편승하여 26.9%의 지지율로 연방내각에 참여한 4대 주요정당(사민당, 국민당,급진민주당,기독민주당)중 최대 득표당이 됨.

   ㅇ 그 결과, 2003.12월 연방장관 선출에서 국민당은 연방장관직을 1석에서 2석으로 배정받고 대신 기독민주당이 2석에서 1석으로 감소, 1959년부터 스위스정부가 지켜온 연방장관의 배분 공식(Magic Formula : 자유민주당 2석, 기민당 2석, 사민당 2석, 국민당 1석의 비율)이 처음으로 붕괴되면서, 자유민주당 2석, 국민당 2석, 사민당 2석, 기민당 1석으로 바뀜.

   ㅇ 2007.10.21 총선에서 국민당은 29%라는 스위스 정당사상 최대 지지율로 하원에서 2003 총선보다 7석이 증가한 62석을 획득 승리함, 또한, 연방내각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좌파계 녹색당도 하원에서 2003 총선보다 6석이 증가한 20석을 획득한데 이어, 상원에서도 최초로 2석의 의석을 획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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