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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바로알기

작성자
주요르단대사관
작성일
2018-03-01
이슬람 바로알기

지금까지 우리는 인구 13억명의 이 거대한 문화권을 단순히 서구의 시각으로 보아왔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깔려 있다. 그러나 21세기 국가경쟁에서 이슬람권에 대한 이해는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이슬람을 다시 바라봐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1.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
일찍이 서구인들은 무슬림들에 의한 정복사업을 소위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이슬람의 호전성과 종교의 강압적 전파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서구인들의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확산되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위기감에서 만들어낸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슬람교는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수탈과 착취가 극심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태동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은 이슬람의 진출을 확대시켰고, 정복 과정에서 많은 이교도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나 강제적 개종은 실제로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슬람 정부가 피정복민들의 문화나 관습·종교 등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그들에게 무슬림들보다 많은 세금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슬람 정부는 대량 개종을 통해 세금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개종금지 백서를 발효하기도 했고, 국가 수입의 증대를 위해 피정복민의 개종보다 공납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 공납 액수도 비잔틴이나 페르시아의 수탈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어서 이슬람제국 하에서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은 종교의 자유와 경제적 기득권을 어느 정도 향유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슬람 전파가 무력이나 강제적 개종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이는 이슬람 세력이 진출했던 지역이 이슬람 세력의 후퇴 후에도 계속 이슬람문화권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입증된다. 또한 10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지금의 중동은 물론 북아프리카로부터 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인도·중국을 비롯하여 스페인을 위시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으로 이슬람의 전파가 가능했던 것도 칼이 아니라 여러 사상과 문화를 수용하고자 했던 융화력과 관용성 때문이었다.

2. 알라인가, 알라신인가
‘알라 이외에 신은 없다’는 꾸란의 구절은 알라가 유일신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즉, 알라는 우주 전체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유일신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다. 이슬람 이전의 아랍사회는 우상을 숭배했던 다신론사회였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러한 우상숭배를 일소하고 유일신 사상을 정립했다. 무슬림들은 알라가 유일하고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며, 우주의 창조주이고 인간과 역사의 절대적 지배자이며, 동시에 인간에게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존재로 믿고 있다. 또 모든 신의 속성과 권능을 뛰어넘는 오직 하나뿐인 최상의 존재로 보고 있다. 따라서 알라는 그 단어 자체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알라를 이중 번역하여 알라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3. 할례, 종교적 의무인가 관습인가
이슬람사회에서는 할례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 시기는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작명의례를 행한 직후인 생후 8일째 할례를 행한다. 남자의 경우 할례의 목적은 남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공동체 구성원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데 있다.
할례일이 공고되면 대상자들은 터번과 새옷으로 단장하고 악사들과 함께 동네 주위를 말이나 낙타를 타고 배회하면서 자신들이 곧 진정한 사회구성원으로 입문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린다. 할례일에는 많은 친지들이 지켜보고 축송하는 가운데 마취 없이 간단한 수술을 행한다.

그러나 여아의 할례는 이슬람학파의 견해와 지역적 특성에 따라 그 적용되는 방법과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수단·이집트에서는 아직도 여아 할례가 행해지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북아프리카·터키·이란·파키스탄 등지에서는 거의 소멸되어 가고 있다.
할례의 방식도 수단에서는 소음순과 클리토리스의 돌출 부분을 포함한 광범위한 부위를 제거하는 데 반해, 다른 지역에서는 클리토리스의 일부를 예리한 칼로 제거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현대의 많은 이슬람학자들은 여아 할례를 이슬람 이전시대의 비종교적 관습으로 보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여성의 할례를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는 여아 할례는 종교적 의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의 성적 기능과 충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남성 위주의 사고에서 비롯된 비종교적 관습인 것이다.

4. 인샬라, 부정인가 긍정인가
아랍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사 가운데 ‘인샬라’(신이 원하신다면)라는 표현이 있다. 이 인사는 흔히 한국인들이 ‘IBM’이라고 부르는 아랍인들의 인사의 첫번째 표현이다. 웬 컴퓨터 이야기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컴퓨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영문자 I는 ‘인샬라’의 머리 글자이고, B는 ‘부크라’(내일), 그리고 M은 ‘말리쉬’(걱정 말아라)의 머리글자인 셈이다. 이 세가지 인사는 아랍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사들이다.

아랍인들은 미래의 일을 언급할 때 ‘인샬라’를 규범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나는 내일 차를 사게 될 거야, 인샬라.” “내일 학교에서 만나자, 인샬라.”라고 말한다. 이 말은 ‘차를 사는 일이나 만나는 일이 내일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원한다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무슬림들은 오직 알라만이 미래의 일을 알고 주관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표현은 다분히 종교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준다.

아랍인들은 시간과 약속 개념이 비교적 약한 편인데, 약속을 못 지키거나 시간을 어길 때 외국인들에게는 이 표현이 책임 회피나 핑계의 수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인사가 결코 무책임하고 핑계를 위한 표현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의 일이 알라를 통해 성취되기를 바라는 소망과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불필요한 오해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아랍인들과 인사를 나눌 때 ‘인샬라’는 이슬람의 종교적 특성에서 비롯된 표현임을 알아야 한다.

5. 이슬람은 왜 일부다처체를 허용하는가
우리가 이슬람권 여성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부다처제’라는 틀 속에 갇혀 남성으로부터 온갖 억압과 속박을 받는 모습이다. 이같은 생각은 주로 서구의 영향이 우리에게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슬람권 여성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은 어떤 것일까?

서구에서는 일부다처제를 현대사회에서 가장 미개한 제도이며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제도이자 여성을 가장 속박하고 억압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슬람권에서는 이 제도야말로 여성을 가장 잘 존중하고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양 극단의 주장에서 우리의 판단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슬람권에서의 여성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이 등장하기전 아랍세계에서 여성의 지위는 단지 재산의 일부로 취급되었으며 필요에 따라 산 채로 매장하거나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아랍·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그러나 이슬람권에서는 꾸란의 계시에 따라 이슬람교가 성립되면서 이런 제도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일부다처제의 발생 원인은 여자가 남자의 수를 능가하거나 한명 이상의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성의 욕구, 그리고 많은 자손을 갖고자 하는 욕망 등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사회에서 일부다처제는 왜 발생했으며,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는 유일하게 일부다처의 허용을 시사하는 구절이 있다.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평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결혼을 할 것이니 너희가 마음에 드는 여인으로 둘, 셋, 또는 넷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을 공평하게 대해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인이나 너희 오른 손이 소유한 것(노비)을 취할 것이다. 그것이 너희가 부정을 범하지 아니할 최선의 길이다.’(4:3)

이슬람 초기 전투에서 많은 남성들이 사망하자 과부와 고아들이 생겨나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으니,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도는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맞아들이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초기 이슬람사회에서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직접적인 이유였다.


이처럼 일부다처제는 초기 이슬람공동체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출현한 제도지만 그 제도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는 종교적 신앙에 가까운 단서가 붙어 있다. 바로 남편은 아내들을 편애 없이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공평성이 지켜지지 않을 때 이 제도는 성립 불가능하며, 설혹 결혼했어도 아내의 합법적인 이혼 조건이 된다.

일부다처제를 지탱하게 하는 이러한 공평성의 주요 내용으로는 아내들의 공동거주·공정부양·공평상속 등이 있다. 그런데 서로 차이나는 성격과 생각을 가진 여인들에 대해 이러한 공평성은 지켜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꾸란에서는 아내들을 ‘공평하게 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그렇다고 하여 ‘다른 아내들을 무시하고 한 아내만을 편애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과 더불어 한 남편이 여러 아내들을 부양해야 할 부담을 감안할 때, 일부다처제는 애초부터 일정한 조건 하에서만 허용되고 또 가능한 혼인제도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현재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이슬람국가들에서도 현실적으로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경우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이 제도에 대해 다른 문화권의 비난과 논란이 많은 것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며, 오히려 이를 악용하려는 일부 남성들의 세속적 욕망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무슬림 여성들은 왜 히잡(차도르)을 쓰는가
히잡은 이슬람세계의 무슬림 여성을 다른 문화권의 여성과 구별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그렇다면 무슬림 여성들은 왜 ‘히잡’을 쓰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히잡 착용의 관습은 이슬람 이전시대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은 꾸란에 의해서였다.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니라. 즉, 가슴을 가리는 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의 부모, 자기 부모, 자기 자식, 자기의 형제, 형제의 자식, 소유하고 있는 하녀,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그리고 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이외의 자에게는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되니라.’(24:31)

이 구절을 보면 ‘유혹하는 것’과 가슴이라고 언급되었을 뿐 무슬림 여성이 가려야 할 신체 부위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슬람 법학자들의 해석에 따라 가려야 할 부위가 결정되었다.

수세기 동안 이슬람세계에서 이러한 관습은 다양한 문화와 인종집단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의 온몸을 덮는 것이 요구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 어떤 지역이나 특정 시대에는 얼굴의 아랫 부분만 가리도록 하였고, 얼굴은 완전히 노출한 채 머리카락만 가리도록 하는 지역도 있었다.

그럼 무슬림 여성들은 왜 ‘히잡’을 착용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우선 꾸란에서의 여성관, 즉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관과 현대 이슬람국가의 전통적 페미니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슬람은 종교적 임무와 수행에서 남녀의 평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혼인, 이혼, 상속권 및 재산권 문제에서도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기능과 업무에서 남성과 여성의 유별을 강조하고 있다. 즉, 남성에게는 경제적 부양 의무가, 여성에게는 자녀 교육과 가정을 보존하는 의무가 주어져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권리는 동등하나 각각의 역할과 일의 영역은 다르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또 이슬람은 여성을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따라서 ‘히잡’ 역시 여성 보호라는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히잡’과 순결성의 관계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18세기 무렵부터 히잡은 경제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시였으며, 순결과 처녀성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사용되었다.

이슬람교의 해석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똑같이 성적 존재로서 성욕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결혼에서는 향유될 만한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곡해되어 여성은 특히 성욕이 강하고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으며, 남성의 성적 탈선은 여성이 지니거나 보여주는 유혹에 기인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슬람의 보수적 시각에서 가정 밖에 있는 여성은 유혹이며 사회적 혼란의 원천으로 간주된 것이다. 이로써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은 그녀와 교제하게 되는 모든 남자들을 타락하게 하는 죄를 짓는 것이며, 그 여성은 제어하기 어려운 남성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즉, 격리와 히잡 쓰기는 여성의 처녀성을 보장하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방어조치로 사용되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은 이슬람운동이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문화적 정체성과 정통성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았던 이슬람주의자들은 무슬림 여성을 이슬람문화의 가치와 전통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이슬람운동 확산후, 이슬람세계의 여성들은 자신들을 이슬람적 가치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전통적 페미니즘 운동을 촉발시켰다.

전통적 페미니즘은 이슬람적 가치에 근거하여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보호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상징이 바로 여성들의 ‘히잡’ 착용이었다. ‘히잡’ 착용은 전통적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많은 여성들이 따랐으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규제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이슬람운동에 따른 여성들의 ‘히잡’ 착용은 국가와 사회 계층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엘리트 여성들의 착용이 늘고 있다. 그것은 무슬림 여성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히잡’ 착용은 서구적 시각에서 볼 때 여성의 권리와 자유의 제약으로 비쳤다. 그러나 이것은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히잡’은 여성을 속박하는 개념이 아니라 여성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의 여성은 ‘히잡’을 정치·경제적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여성운동의 도구로 활용하였다. 이집트에서는 ‘히잡’이 여성의 사회·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히잡’의 자발적 착용이 확대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히잡’ 착용은 여성의 이동의 자유는 물론 사회활동의 많은 영역을 확보해 주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이 여성에 대한 속박이라든지 혹은 자유를 박탈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그것은 이슬람문화의 독특한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서구적 시각에서 탈피해 상대주의 원리에 입각해 무슬림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히잡’은 이슬람적 가치에 근거하는 무슬림 여성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7. 참수형·투석형·손목절단형 아직도 시행되나
이슬람법(샤리아)은 간혹 해외토픽에서 간음하면 돌로 쳐죽인다든지 도둑질하면 손을 자른다든지 하는 등의 일반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만 소개되어 있을 뿐, 그 법의 진면목은 전혀 알려지거나 연구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법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언행을 판결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완벽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도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법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사 이슬람법이 모든 무슬림국가들의 실제생활 모두를 규제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념적으로는 무슬림들의 생활 전반을 규제하는 종교적 규범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법이 신의 말씀이고, 인간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라고 믿고 있다. 어떠한 이유로든 신의 말씀을 배반하여 그의 노여움을 사는 행위는 죄이고 악이며 불의일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다.

따라서 살인·상해·간음·강도·음주·절도와 같은 범죄에 대해서는 이슬람법에 규정한 대로의 형량을 엄격히 적용한다. 이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인권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신체훼손을 수반하는 형벌제도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이슬람법이 실행되는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슬람국가에서는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 일부에서 행해지는 보복법도 흉악범이나 전과범들을 대상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될 뿐이다.
                                                                                               -최진영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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