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정책

스페인 개관

  1. 정책
  2. 스페인 개관
  • 글자크기

스페인 내전의 원인과 경과

작성자
주스페인대사관
작성일
2009-02-02
 

  1931년에 실시된 선거에서 공화파가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왕정이 폐지되고 제2공화국이 선포되었으며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여성이 최초로 투표권을 행사한 1933년 선거에서는 우파가 승리를 거두었으나 1936년 선거에서는 좌파 연합인 인민전선이 다시 승리하여 마누엘 아시냐 총리를 중심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하였다. 좌파 정권의 탄생과 개혁에 불안을 느낀 군부가 프란시스꼬 프랑꼬(Francisco Franco, 1892~1975) 장군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내전(1936~1939)이 발발하였다.





  공화파는 쿠데타군보다 도덕적으로는 우위에 있었으나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 이질적인 집단의 혼합체로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전투력을 보유하지 않았다. 반면 국민전선은 잘 훈련된 군대, 수적인 우세 그리고 독일과 이태리의 파시스트 정권의 지원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세계대전을 벌이기 전에 실전연습과 무기실험을 위해 프랑꼬 장군에게 물자, 무기, 비행기, 군대를 지원했다. 반면 공화파는 소련과 멕시코로부터 무기, 식료품, 비행기, 군사 고문단 등을 지원받는 한편, 미국의 링컨 여단 3천명과 세계 각국에서 온 반파시스트 국제여단 10만 명의 지원을 받았다.





  스페인 내전은 깊은 상흔을 남겼다. 내전은 주로 유혈이 많은 소모전으로 이어졌고 양쪽 모두 잔학행위가 심했다. 전선에서만 약 백만 명이 전사하였고, 민간인을 포함하여 쌍방에서 약 20만명이 살해되었다. 처형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몇 년 동안 계속되어 그의 통치에 있어서 다른 어떤 면보다도 더 많은 비난을 받은 원인이 되었다.





  전후에는 정치인, 지식인, 작가, 예술가 등을 포함해 약 50만명의 전문직 인재들이 주로 프랑스나 중남미로 망명하는 바람에 전후 국가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진정한 평화가 온 것은 아니었다. 나라는 승자와 패자로 나뉘었고 화해를 통한 사회통합이 실패하여 그 여파는 후세에까지 이어졌다.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