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마스커스,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
시리아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기 전까지 이곳은 BC 1000년경 아람왕국의 수도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다마스커스는 로마 제국에서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로마시대 이후 이슬람이, 그리고 몽고가 이곳을 지배했고, 중세때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다마스커스 구시가는 로마시대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오랜 기간 동안 성벽의 부분부분이 만들어졌다. 그 중 Safety Gate와 Thomas Gate 사이의 성벽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또 한곳의 로마 시대 유적으로 서쪽 관문에 자리잡고 있는 주피터 신전을 들 수 있다. 이 커다란 구조물은 BC 3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우마야드 모스크(Umayyad Mosque)
다마스커스 시내 중심에 차지한 우마야드 모스크는 비잔틴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다마스커스 최고의 명소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슬람 사원중 하나이다. 세계 4대 이슬람 사원 중의 하나로 수백년동안 이슬람 교도들의 성전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전성기 이슬람 제국의 수도였던 당시의 찬란함을 보여주고 있다. 웅장한 건축물과 정교한 벽화, 사원 안의 넓은 광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슬람 사원이다.
본래, 사원 자리에는 주피터 신전이, 다음에 교회가 자리 잡았다가, 7세기경 아랍인들이 지배하면서,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들이 같은 건물에서 각자의 종교의식과 회합을 가졌다. 그러다 이슬람교도들의 수가 증가해 건물 전체를 이슬람인들이 차지하는 대신,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교회를 지어 주었다. 이때 이슬람 국왕은 다시 사원을 짓기 시작했고 이렇게 완성된 것이 우마야드 모스크이다. 여러 나라에서 불려온 많은 기술자들이 수년동안 모스크를 건설하는데 동원되었다. 교황 바오로 2세도 우마야드 모스크를 방문한 바 있다.
* 아젬 궁전(Azem Palace)
18세기 14년동안 다마스커스를 통치했던 Assad Pasha al-Azem이 건설한 건축물로 궁전같은 화려함이 인상적이다. 이곳을 지으려고 다마스커스의 모든 목수와 석공들을 불러들이고, 바라다 강물을 궁전의 정원으로 끌어들일 만큼 총력을 기울였다. 아젬 궁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건물의 외관과 내부의 극명한 대비이다. 건물 자체는 굉장히 단순함을 지양해 별다른 장식은 보이지 않지만 통일된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내부벽면은 적색, 백색, 황색, 흑색 등 다양한 색깔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Assad의 후세들에게 대물림되면서 20세기까지 그의 가문의 사람들이 거주했었다. 프랑스가 다마스커스를 침입했을 때는 군사령부로 쓰였고, 프랑스 통치때는 대학건물로 사용되었다. 시리아의 독립쟁취후 대대적인 복구작업에 들어갔고, 1953년 박물관으로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 시리아 국립박물관
헬레니즘, 동로마제국, 이슬람 각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헬레니즘의 유물은 세계 최고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바자르 수크 (Bazzar Souk)
유명한 상아세공, 은/동제품, 식기, 목각직물이 판매되고 있다. 시리아인의 생활 풍취가 풍기는 시장이다.
* 사도바울 관련 유적
o 낙마교회 : 사도바울이 부활 예수를 만나 회심한 곳
Jadida Artuz, Tal Kaukab 지역에 소재, 베이루트 남쪽 15-18 km
o 아나니아 교회 : 바울을 안수한 집사 아나니아를 기념한 곳
o 광주리 교회 : 바울이 개종후 유대인의 핍박을 피해 광주리를 타고 피신한 곳
▣ 사막의 꽃, 팔미라(Palmyra)
팔미라는 ‘사막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오아시스 도시였다. 실크로드상에 위치하였던 역사적인 도시로, 시리아를 방문한 이들이 다마스커스와 함께 반드시 들르는 명소이다. 제노비아 여왕시 전성기를 누리다, AD 27년 로마황제 아우렐리우스에 의해 파괴되기 전까지 로마와 극동지역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남아있는 유적을 통해 과거의 영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근방에는 오아시스가 여전히 남아 있어 푸르른 야자수 숲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팔미라 유적지는 18세기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발굴품중 공예품의 기술은 놀랄 만하다.
* 벨 신전 (Bell Temple)
팔미라 유적지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신전으로 거대한 아치와 기둥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남아있는 신전의 벽면에서는 당시의 정교한 조각술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 새겨져 있다. 200 평방미터 규모의 커다란 정원 부지를 포함하고 있다
▣ 알레포 (아랍명, 할랍)
시리아 제2의 도시인 알레포는 규모나 역사적인 면에서 다마스커스 못지 않은 곳이다. 터키에서 국경을 통과하여 도착하는 첫번째 도시로 단색의 건물과 함께 낯설지 않은 느낌이 오는 도시이다. 오천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알레포는 유럽과 아라비아 반도를 통해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교역도시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터키에서 온 아르메니안 기독교도들의 거주지도 형성되어, 지금도 커다란 성당과 교회가 남아 있다. 알레포 주요 관광지로는 알레포 성을 중심으로 대사원, 재래시장, 대상숙소를 연결하는 구시가, 그리고 국립박물관을 시작으로 공원과 아르메니안 교회가 있는 al-Jdeida 등이다.
▣ 마룰라 (Maaroula)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고장이다. 성 세르기우스 성당과 바위산 꼭대기의 성 테클라 수도원이 위치하고 있다.
* 성 테클라 수도원 (CHAPEL OF ST. THECLA)
터어키 콘야 (신약의 이고니온) 출신으로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접하고 터어키 남해안의 실리프케에 세계 최초의 여자 수도원을 창설했던 인물이다.
실리프케에 창설했던 수도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되었으나, 이곳에는 그의 유해가 안장된 수도원이 남아 있다.
* 성 세르기우스 성당 (CHURCH OF ST. SERGIUS)
성 세르기우스는 북부 헤사파 출신으로 그곳 로마군 수비 대장으로 있을 때 유프라테스 강변 요새지에 순시하러 갔다가 몰래 기도를 하던 중 이것이 발각되어 헤사파로 호송된다. 당시는 테키우스가 황제로 있을 때인데, 그는 비밀 집회를 갖고 권세와 부를 가진 자들을 비판하고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들을 옹호하던 기독교인들을 국사범으로 취급하여 모든 기독교인을 색출하여 혹형에 처한 까닭에 기독교 박해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이에 그의 호송병들은 그의 군화 바닥에 못을 박아 이를 신고 걷게 했으며, 헤사파에 도착해서는 입술에 로프를 꿰어 달고 칼로 난자하는 혹형을 가하였지만 그는 끝까지 믿음을 부인하지 않고 순교하였다. 그 후 그의 믿음과 용기로 시리아 크리스천의 수호 성자로 추앙되었고 기념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 성모 마리아 교회 (CHURCH OF ST. MARY)
시리아 교회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성모 마리아의 허리띠를 보관해둔 교회. 현재 이 교회에서는 아람어로 예배를 하고 사제들도 아람어 교육을 받고 있으며, 아람어 성경 필사본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예수도 아람어로 강의하였었는데 신약의 상당 부분이 아람어로 기록되었던 것을 후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번역되었으며, 지금은 사라진 용어로 알고 있던 아람어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 기사의 성채 (크락 데 쉬발리에; Crac Des Chevalier)
누구나 한번쯤 달력의 아름다운 성 중 하나로 보았을 듯한 견고하고 아름다운 성이다. 그 규모나 시설, 지리적 위치가 찾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다. 1031년 홈스(Homs)의 군주에 의해 내부 성이 건설되었고 12세기 십자군이 점령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확장공사를 했고 외벽을 쌓아 1170년 완공하였다. 견고하게 건조된 탓에 많은 침략과 두번의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모습이 거의 남아 있다. 오스만 제국이 아라비아 반도 전역을 점령할 시 술탄 베이바(Sultan Beybars)에 의해 이곳도 1271년 한달에 걸쳐 포위공격을 받다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던 십자군이 항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은 2개의 구역으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마굿간과 타워가 있는 외각 성벽이고 나머지는 안쪽 가파른 언덕위에 세워진 성이다. 외벽과 내벽 사이에는 깊은 도랑이 파져 있는데 이전에는 빗물을 저장하여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물은 적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도 하고 군마를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정문 입구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안뜰로 들어가는 통로와 바깥 성벽을 돌 수 있는 길이 갈라져 있다. 왼쪽 성벽으로 가면 형태만 남아있는 목욕탕이 수풀에 뒤덮여 있고 곧장 가면 규모가 큰 마굿간이 있다. 물과 먹을 것을 주던 구유 모습의 형태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 옆으로 원형의 남서 타워(south-west tower)가 있는데 포를 넣는 구멍으로 몰려오는 적들을 바라볼 수 있다. 타워 옆 계단으로 오르면 외각 성벽의 꼭대기로 연결된다. 이곳에서 성벽 반바퀴를 돌아 볼 수 있는데 아찔한 높이로 걸으면서 돌아보는 주위의 전경이 장관이다. 내부 성은 곳에 따라 지하, 1층, 2층의 규모를 갖는데 지하는 거의 창고와 무기 저장고로 사용되었다. 북쪽으로 교회당이 있는데 오스만 침공 후 사원으로 바뀌었다. 남쪽으로 성 내부중 가장 인기 있는 전망대가 있다.
▣ 보스라 (Bosra)
대형 원형 경기장(15,000석, AD 2세기 로마시대 건축)의 위엄이 놀랍다.다. 보스라의 유적을 통해 헬레니즘 문화가 나바티안에서 로마를 거쳐 비잔틴까지 계속 이어져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보스라는 로마 목욕탕 옆에 14세기 이슬람의 함맘(목욕탕)이 있는데, 양쪽 모두 같은 내부와 같은 기능성을 가지고 있다.
▣ 라타키아 (Lattakia)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으로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도시인 라타키아는 터키의 마르마리스나 보드룸처럼 관광객의 도시이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카페와 상점들, 역사적인 과거보다는 여름을 만끽할 수 있는 바다가 더 뇌리에 박혀있는 도시다. 해안가에 작은 박물관이 하나 있으며, 근방에 우가리트(살라딘 장군 성채), 마르깝 성채, 타투스 등의 유적지가 있다.
▣ 하마 (Hama)
1982년 반정부 봉기로 시민의 많은 수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유명한데, 많은 수의 노리아(noria)가 물이 말라버린 강가에 형체만 드러내고 있는 도시이다. 과거에는 활발했던 상업의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과거의 명성만은 못하다.
* 노리아스 (Norias)
노리아스(물레바퀴)는 하마의 최고 명물로 오론테스 강(Orontes river) 주위에 10여개가 들어서 있다. 지름이 20미터에 달하는 나무로 만들어 졌는데 19세기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14세기 지어진 ‘알 무함마디에’ 노리아스는 성터 오른쪽에서 물레 100여 미터 안쪽에 있는 대사원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 시드나야 (Sydnaya)
다마스커스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유명한 그리스의 정통 여자 수도회가 위치하는 Sydnaya라는 작은 도시가 위치한다. 수도원은 다마스커스 평야의 농장과 과수원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 언덕위에 서 있다.
수도원은 6세기 경에 설립된 것으로 전해져 오는데 비잔티움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사냥 대회때 언덕 위에서 사슴을 쫓고 있었는데 사슴을 향해 활을 날리려는 순간 사슴은 기적적으로 성모 마리아 (Virgin Mary)로 바뀌었고,그에게 바위 위에 수도회를 만들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구전으로 전해진 신화와 수녀회의 유명한 성화상의 기적의 힘에 의해 이 장소는 빠르게 성도들의 순례 장소가 되었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모두 이곳을 성지로 순례여행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