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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사의 글 - 중국 광주 영사관, 천 주성 영사님과 총 영사님
작성자 김남승
작성일 2013-02-21
앞에 같은 감사 글이 올라와 있네요. 저도 긴 해외 생활 중 해외 영사관과 영사님의 도움으로 벗어난 암흑 같은 10개월을 대한 민국 국민으로서 해외 거주하시는 분들과 외무 공무원들과 같이 공유하고자 간단하게 올려 봅니다. 2012년 3월에 직장 생활 25년, 해외에서만 21년이 되는 시점, 작년에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이 회사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것이 물론 말로 표현할 수가 없도록 엉망이었고, 절망이었습니다.. 대한 민국의 품이 아닌 타국에서 발생 했기에 정도가 더했던 것 같습니다. 회사를 이끌어 가는 최전방의 조타수가 방향을 잘못 잡고, 전체 의사를 무시하고, 극소수가 폐쇄적으로 회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좌지우지하면서 회사를 천길 만길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지역 사회 경제에 커다란 이슈가 되어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혼돈 속에서 길을 찾고 있을 때 더욱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던 일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회사에서 근무하던 한국 임원들을 사전 통보 없이 출국 금지로, 외국인들을 자기네 땅에서 범죄자 아닌 범죄자로 둔갑시켜 놓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이곳의 더운 여름에 어디에서부터 출국 금지를 시작되었는지 출처를 확인하고자 암담한 상황에서도 백방으로 여러 라인을 통하여 알아봐도 해결의 실마리는 오리무중,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천우신조로 2012년 10월 중에 중국 광주 총영사관님과 천주성 영사님의 도움으로 출금을 걸은 출처를 알게 되어, 나의 조국, 대한 민국이 저를 대신하여 공식 채널이 되어 국가 대 국가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출금을 알게 된 지 10개월 만에 일이여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지요. 대화를 시작한 후, 얼마 안되어 예정에도 없던 공안국 조사를 받았으며, 약 두 달 후에 대사관으로부터 출금이 풀렸다는 공식 통보를 받았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어머니께서 병환으로 중환자실에서 고통을 겪으실 때도 출금 때문에 한국에 가지 못하고 집사람이 한국으로 가서 아들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보고 왔으며, 그 후에 제가 어머니 임종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출금이 풀려 마지막 가시는 길 잘 보내드렸습니다. 아마 그때도 안 풀렸으면, 1월 중순에 하늘 나라로 가신 어머니를 못 뵙게 되어 평생 불효자가 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광조우 총 영사관과 천 주성 영사님의 계속적인 도움으로 한국에 가서 어머님 뵙고 잘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대한 민국의 국민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자긍심을 느꼈으며, 대한 민국 외교 공무원의 이미지와 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20년 넘게 해외 생활을 하면서 근무지로 미국, 스리랑카, 중국, 덴마크에서 주재원으로 일정 기간을 거주하여 보았지만 대부분의 인식이 외교 공무원들은 무언가 일을 위에서 하는 분위기가 우선이며, 그리고 급할 때일수록 서로 소속과 관할을 많이 따지며, 규정이란 말을 먼저 하며 일을 접수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 일로서 헌신적인 외교 공무원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또 이런 분들이 세계 각국에서 자국민에게 항상 도움의 손길을 준다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져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중국 광주 소제 대한민국 광주 영사관의 천 주성 영사님 그리고 총영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항상 해외 거주 국민들의 아픈 곳을 만져주기를 빌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건승 하십시요. 2013년 2월 19일 김 남승/중국 복건성 하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