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의 정서
스크랩초바 크세니아

20세기, 한민족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럽고 운명적인 시기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유혈 전쟁에 이어 수많은 이산 가족을 만들어낸 분단은 한국민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각인으로 남았습니다. 한국은 최근 자유, 독립 그리고 번영의 길로 들어섰지만 과거 끔찍한 사건의 기억은 여전히 남은 이들의 머리와 마음 속에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또 그 뼈아픈 기억들은 쓰라린 고통, 끝없는 슬픔, 피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감정을 담은 단어를 우리는 ‘한(恨)’이라고 부릅니다.
‘한’이라는 뜻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단어 자체는 분개, 미움, 후회를 의미하는 한자인 恨에서 유래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조선의 현실과 그 이후 일련의 사건에서 ‘한’은 원한과 부당함,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무력감, 분노로 인한 극심한 고통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한’의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개인에서 집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회에서 작동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한’은 우울한 역사적 사건들이 국민에게 가져다 준 보편적인 민족적 슬픔에서 나아가 개인의 정신적 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숨을 옥죄는 자유의 부재와 부당한 박탈로 인한 고통, 또 이 고통은 표출할 수 없어 더욱 깊어지기만 합니다.
한편, ‘한’의 본질을 파고들면 꽤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은 일종의 외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됩니다. 무력감과 슬픔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한’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한’의 감정은 오롯이 느낄 수만 있습니다.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가장 진실하고 확실하게 반영한 것입니다. 한국 예술은 ‘한’이 민족 문화와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가장 좋은 예는 바로 판소리와 명창과 고수가 어울려 이야기를 풀어내는 노래입니다. 판소리는 일제강점기와 남북전쟁 훨씬 이전에 등장하였지만,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계기로 조선에 새로운 상징적인 의미로 자리잡아 듣는 이로 하여금 늘 그리움과 고통이라는 감정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 올드보이, 부산행, 기생충과 같은 현대 영화에도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어 결말은 불의와 원한에 시달린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이라는 본질에 깊이 들어갈수록 벨라루스 인들의 사고 방식과 매우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식민지 과거, 파괴적인 전쟁, 무력감, 억압과 상실에 대한 갈망...... 이 모든 것이 한국과 벨라루스 국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들입니다. 따라서 벨라루스 사람들은 ‘한’의 개념을 외계어가 아닌 쉬이 이해할 수 단어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또 벨라루스의 역사적 고난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족 예술, 특히 문학에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특히 20세기 블라디미르 코로트케비치, 바실 부코프 그리고 양카 쿠팔라와 같은 국민 시인들의 작품을 두고 벨라루스식 ‘한’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 예술에서 벨라루스식 우울한 감정은 20세기 가장 비극적인 사건과 삶을 그려낸 영화 ‘쿠팔라’에서 극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벨라루스 예술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민중의 어깨에 짊어진 쓰라린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 속의 영웅은 투사이자 고통 받는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슬픔은 인간을 더욱 가깝게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의 ‘한’의 개념이 벨라루스의 정서와 얼마나 조화롭게 나타나는 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역사적인 사건과 그로부터 시작된 인간이 겪는 슬픔입니다.
벨라루스 시민기자단 6기 스크랩초바 크세니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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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의 내용은 주벨라루스 대사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자료 출처
사진 1: 영화‘서편제’ 스틸컷
사진 2: 영화 ‘서편제’ 스틸컷
사진 3: https://ecoidea.by/ru/article/1363
사진 4: https://ecoidea.by/ru/article/13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