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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벨라루스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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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기본 현황

  • 국 명 : 벨라루스 공화국 (Republic of Belarus)
  • 수 도 : 민스크 (인구 : 약 198만 명)
  • 주요도시 : 고멜(141만 명), 모길료프(105만 명), 비텝스크(118만 명), 그로드나(104만 명), 브레스트(138만 명)
  • 위 치 : 폴란드(서), 우크라이나(남), 러시아(북동), 리투아니아(북서), 라트비아(북)과 각각 인접
  • 국 경 : 2,900km (라트비아-141km, 리투아니아-502km, 폴란드-407km, 러시아-959km, 우크라이나-891km)
  • 해 안 선 : 없음 (내륙국)
  • 정 체 : 공화제 (대통령제)
  • 면 적 : 207,600㎢ (한반도 면적과 유사)
  • 자연조건 - 지 형 : 대부분이 평지, 산림(영토의 34%) 또는 습지 - 기 후 : 겨울은 춥고 여름은 시원하면서 다습 - 연간강우량 : 560~660mm
  • 인 구 : 약 947만 명 (2019. 1월 기준) - 벨라루스인 81.2%, 러시아인 11.4%, 폴란드인 3.9%, 우크라이나인 2.4%, 기타 1.1% - 72.4%가 도시 거주
  • 언 어 : 벨라루스어(국어), 러시아어(국어)
  • 종 교 : 러시아정교 80%, 기타(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교) 20%
  • 국 경 일 : 1944. 7. 3(독립기념일)
  • 화 폐 : 벨라루스 루블(BYR, Belarusian ruble)이며 USD 1 = 약 2.09(BYR)에 해당 (2019.5월 기준)
  • 행정구역 : 6개주(Oblast)와 특별행정구역(민스크시)
번호, 주, 중심지, 면 적(㎢), 인구(명)의 정보를 제공하는 테이블
번호 중심지 면적(㎢) 인구(명)
1 민스크주 민스크시 40,200 1,426,500
2 그로드나주 그로드나시 25,000 1,043,700
3 브레스트주 브레스트시 32,300 1,384,500
4 고멜주 고멜시 40,400 1,415,700
5 모길료프주 모길료프시 29,000 1,058,800
6 비텝스크주 비텝스크시 40,100 1,180,200
7 민스크시 - 307,9 1,982,400

민스크시는 특별시로 민스크주와 행정상 별도의 도시이나 민스크주의 주도(중심지)로서 행정중심지이다.

  • 문 맹 률 : 0.4%
  • 외 채 : 397. 4억달러 (2018. 4월 기준)
  • 군 사 력 : 육군 30,000명(하천함대 포함), 공군(방공군 포함) 18,000명 - 정규군 이외에 내무부 보안군, 국경수비대 등 준군사조직 보유
  • 시 차 : 민스크(+3)-서울(+9)간 6시간 차이
벨라루스라는 국명의 기원의 정보를 제시하는 테이블
벨라루스라는 국명의 기원
벨라루스는 구소련 시절에 “백러시아(White Russia)”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이다. 흰색을 뜻 하는 “벨라”와 “루스”가 합쳐진 말인데 그 명칭의 기원에 대한 확실한 정답은 없지만 위키피디아는 몇 가지 설을 소개하고 있다.
  •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동슬라브족 거주지역(Ruthenia)중 일찍 기독교화된 슬라브족 거주지를 백루스(White Ruthenia), 기독교화되지 않은 원시 슬라브족 거주지를 흑루스(Black Ruthenia)라고 불렀다는 설
  • 흰 옷을 즐겨입던 동슬라브족 거주지를 벨라루스라고 불렀다는 설
  • 13세기 몽골군의 침입시 몽골군의 침략을 받지 않아 순수성(흰색)을 보존한 지역을 벨라루스라고 불렀다는 설
  • 벨라루스는 15세기에 모스크바대공국이 점령한 노브고로드 공국 지역을 지칭한다는 설 한편, 루스(Ruthenia 또는 Rus)라는 명칭은 특정 국가가 아니라 중세 이래 동슬라브족이 거주하던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는데, 모스크바 대공국이 이반 4세 이후 키예프루스의 후계자로 자처하면 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로부터 동슬라브족 거주지역을 탈취하고 전 동슬라브지역의 종주권을 주장 하기 위해 루스의 국가, 즉 “러시아”라고 자칭했다. 따라서, 벨라“루스”라는 명칭은 현재의 러시아와 는 무관하며 영어명칭도 White Rus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나, White Russia라고 호칭되는 것은 루스가 러시아로 변화된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벨라루스의 국명을 표기하는 방법도 백러시아, 벨로루시, 벨라루스 등 변화해 왔는데 이러한 명칭의 어원을 고려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벨라루스의 국명을 표기하는 방법도 백러시아, 벨로루시, 벨라루스 등 변화해 왔는데 이러한 명칭의 어원을 고려한 것이다.

벨라루스의 약사

벨라루스에 공국들이 세워진 것은 6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다. 폴라츠크 공국, 투로프 공국, 핀스크 공국, 민스크 공국 등 슬라브족 국가들이 창설되었는데, 이들은 노르만족 계통인 루스족의 도움을 받아 창설된 키예프공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키예프공국은 1240년 몽골의 침략으로 붕괴되어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오늘날의 벨라루스에 해당되는 공국들은 몽골에 항거하여 그로드나에서 키예프에 이르는 지역을 통일한 리투아니아대공국에 병합된다. 리투아니아대공국은 1410년 폴란드와 동맹하여 독일기사단(튜튼기사단)을 격파하고 동유럽 북서부의 넓은 지역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리투아니아대공국은 이미 1386년 폴란드와의 혼인동맹을 통해 동군연합(a personal union)을 이루고 있었는데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은 1569년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으로 발전한다.

리투아니아대공국(13-15세기) 및 폴란드 지도 리투아니아연방(16세기) 지도 <리투아니아대공국(13-15세기) 및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16세기) 지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은 15세기 말 이래 우크라이나 및 벨라루스 등 키예프공국의 고토를 노린 러시아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는데, 3차에 걸친 폴란드 분할을 통해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게 1795년에 최종적으로 분할되었다. 벨라루스는 이때 대부분 러시아에 편입된다.

벨라루스는 나폴레옹 휘하 프랑스군의 러시아 침공과 러시아군의 반격(1812년)시 진격루트가 되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시 독일군과 러시아군의 주전장으로 격전지가 되었다.

벨라루스는 독일과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을 휴전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 직후인 1918.3.25 독일군의 점령하에서 벨라루스인민공화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독일의 패배와 독일군의 철군 이후 러시아 적군이 진주하면서 소비에트 정권이 창설되어 1919년 벨라루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Belorussian Soviet Socialist Republic)이 선포된다.

벨라루스 및 우크라이나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1919.2-1921.3월까지 계속된 소련-폴란드 전쟁은 벨라루스의 영토를 또한번 요동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한 연합국의 최고사령부는 1797년 제3차 폴란드 분할 이후 러시아와 프로이센간 합의된 국경을 기준으로 커즌라인(Curzon Line)이라고 하는 소련-폴란드 휴전선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소련 내전의 혼란속에서 옛 폴란드 영토(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의 고토)에 대한 지배권을 찾으려는 폴란드와 공산혁명의 완수를 위해 폴란드 동부지역의 전략적 요충지가 필요했던 소련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1919.2월 소련-폴란드 전쟁이 발발했던 것이다. 소련-폴란드 전쟁은 1921.3월 리가조약을 통해 종결되었는데 리가조약을 통해 소련-폴란드 국경은 커즌라인에서 250km 정도 동쪽으로 떨어진 곳으로 정해졌고, 벨라루스의 상당부분이 폴란드 영토로 편입되었다.

벨라루스는 이렇게 해서 서부 국경을 확정하고 1922.12월 러시아, 우크라이나, 트랜스카프카즈공화국과 함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창설한다. 그리고, 스탈린 시대인 1920-30년대에는 5개년 계획으로 농업집단화 및 산업화가 이루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은 벨라루스의 역사에 또 한번의 큰 획을 긋게 된다. 1939. 9.1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데 이어 소련이 1939.9.17 폴란드를 침공하여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는데 이때 소련군이 점령한 폴란드 동부지역은 1939.11월 독일과 소련간 비밀협약에 의해 벨라루스의 영토로 인정받게 된다.

그후 1941.6월 독일군의 선제공격으로 독일-소련 전쟁이 발발하자, 벨라루스가 독일군의 진격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세계 최대의 육군국인 독일과 소련간 전면전으로 소련의 인명피해만 1천만명이 넘었는데, 독일과 소련의 중심부로 진격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벨라루스가 그 사이에서 어떤 피해를 입었을지는 상상할 만하다.

벨라루스는 1941.7월 독일군의 점령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1943.2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승기를 잡은 소련군은 1944.7.3 민스크를 탈환하였고 그해 가을 무렵 벨라루스 전역을 탈환하였다. 벨라루스는 독일에 점령되고 다시 소련에게 탈환되기까지 약 3년간 200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입었고 산업시설의 80% 이상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벨라루스인들은 나치의 혹독한 점령정책하에서도 자체적으로 유격대(파르티잔)를 조직하여 치열한 반나치 투쟁을 전개하였다. 나치가 점령하고 있던 1941-1944년간 활동한 벨라루스 파르티잔은 모두 약 374,000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그 이외에도 도시 지하 저항조직, 파르티잔 예비군 등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벨라루스의 국경은 현재의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으로 확정되었으며, 소련 정부의 주도하에 적극적인 전후복구와 산업부흥화를 통해 소련내 주요 제조업지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하면서 벨라루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참사를 당하게 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피해 정보를 제시하는 테이블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피해
  • 1986.4.26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벨라루스의 근현대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최대의 국가적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체르노빌은 지리적으로 우크라이나 북부에 위치해 있지만 벨라루스 국경에 가까이 위치해 있고 사고발생 당시 동남풍을 타고 방사능물질이 북서쪽, 즉 벨라루스쪽으로 확산되면서 벨라루스가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실질적인 최대 피해국이 되었다(체르노빌에서 유출된 방사능의 70%가 벨라루스에 낙하되었다는 통계도 있다).
  • 벨라루스는 현재까지 방사성물질로 오염된 6,200㎢의 지역을 외부와 격리, 관리하고 있는데, 그중 1,700㎢ 지역을 격리지역으로, 4,500㎢의 지역을 주민소개지역으로 구분, 관리하고 있다. 벨라루스 비상사태부의 추산에 의하면 체르노빌 사고결과의 수습·처리비용, 오염으로 인한 물적손실, 기회비용 등을 고려할 때 경제적 손실이 약 2,350억달러에 이르며, 사고 오염지역으로부터 소개시킨 주민은 13만8,000여명, 자발적으로 오염지역을 떠난 주민은 20만명으로 보고 있다.
  • 벨라루스 정부는 다양한 정부프로그램과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복지법, 방사능안전법 등을 제정하여 피해자 지원 등 대책을 실시중이며, 식품오염 감시활동, 자연환경 감시활동, 방사능오염 제거 및 농축산물 오염정화 활동, 오염된 산림지역 격리 조치, 피해주민 정기검진, 원전사고 관련 연구·홍보활동 등을 통해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후유증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1990.3월, 벨라루스 최고소비에트 선거 결과 독립파는 10%에 불과한 의석을 얻었지만, 벨라루스인들의 독립 열망은 계속 높아져 갔고 1990.7.27 벨라루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벨라루스 SSR)의 국가주권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벨라루스 SSR은 1991.8.25 국명도 벨라루스공화국(Republic of Belarus)으로 개칭하였으며 스타니슬라브 슈스케비치 최고회의 제1부의장을 최고회의 의장 겸 국가원수로 선출한다. 벨라루스는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와 함께 1991.12.8 소련의 해체와 독립국가연합의 결성을 선포하게 된다.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벨라루스 헌법은 1994.3월 채택되었으며 1994년 선거결과 당시 무명에 가까운 알렉산더 루카센코 대통령이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루카센코 대통령은 1996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임기를 기존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였고 2001.9.9, 2006.3.20, 2010.12.24 등 3회에 걸쳐 재선되었다. 종전 헌법상 대통령 3선 금지 규정이 있었으나 2004년에 3선 금지규정은 철폐되었다.

벨라루스는 유엔의 창설회원국 정보를 제시하는 테이블
벨라루스는 유엔의 창설회원국
  • 벨라루스는 유엔의 창설회원국이다. 그런데, 벨라루스가 주권국가로 독립을 선언한 것은 1990.7월이고 소련이 해체된 것이 1991.12.8이라면 어떻게 벨라루스가 독립하기도 전인 1945년에 유엔회원국이 될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교무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가 주도했으며 소련이 다소 열세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 이에, 소련은 “소련의 각 연방공화국(소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공화국)은 독자적인 외교권을 갖는다”는 소련 헌법을 근거로 소련 연방명의의 유엔 회원국 자격 이외에 15개 소련 연방 구성공화국 들이모두 별도로 유엔에 가입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미국이 이에 강력하게 반대함은 물론이다.
  • 서방진영과 소련간 지루한 교섭끝에 소련 연방공화국 중 반나치 투쟁에 공헌이 큰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가 유엔회원국으로 인정된다.

인구

2018년 6월 기준으로 벨라루스 인구는 약 949만 명으로 추산되며, 전반적으로 감소추세이다. 인구 중 벨라루스인이 81.2%를 차지하며, 2018년 인구증감률은 2017년 대비 -0.14%이다. 남녀 성비는 0.87:1이다. 자연성비가 1.06:1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비의 불균형이 상당히 심각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평균 수명은 약 74.4세이며(2017), 남성 69.3세, 여성 79.2세이다. 인구 전체의 평균연령은 39.7세로 알려져 있다.

언어 및 종교

언어

벨라루스에 처음 도착하는 사람들은 벨라루스의 공용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갖게 된다. 벨라루스가 독립국이며 벨라루스어가 따로 있고 우크라이나나 카자흐스탄 등 다른 CIS 국가들이 러시아어보다 자국 고유어를 장려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니 벨라루스도 러시아어보다 자국어를 적극 장려할 법도 한데, 러시아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으니 그런 질문을 할 만 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벨라루스에서는 러시아어와 벨라루스어가 모두 국어(national language)이다. 벨라루스어는 당연히 벨라루스의 국어이고, 러시아어도 1995년 국민투표를 통해 국어로 채택되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러시아어가 벨라루스어보다 더 많이 쓰이고, 그러면서도 길거리의 주요 도로표지판이나 관공서 건물에는 벨라루스어 표지판이 자주 눈에 띈다.

구소련권내 러시아어 공용 실태 정보를 제시하는 테이블
구소련권내 러시아어 공용 실태

러시아는 구소련 지역내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으나, 각국에서 러시아어의 지위는 서로 다르다.

  • 국어(national language): 러시아, 벨라루스
  • 공용어(official language):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 통용어(language for interethnic communication): 타지키스탄

여타 구소련 국가들은 자국어만을 국어로 지정하고 공용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러시아어가 일상적으로 특히 구소련시대를 거친 장년층을 중심으로 통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벨라루스는 러시아 이외에 러시아어가 공식적인 국어로 지정되어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그렇다면 벨라루스어는 러시아어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선 동슬라브어라는 점에서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는 서로 가까운 언어이다. 특이한 것은, 벨라루스어를 구사하는 벨라루스인들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러시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고 러시아어를 학습하기도 비교적 쉽다고 하는데, 러시아인들은 벨라루스어를 따로 학습해야 이해할 수 있고 벨라루스어를 배우기도 그만큼 쉽지는 않다고 한다. 이는 고대 슬라브어가 오늘날과 같이 분화하기 전의 옛 모습을 벨라루스어가 비교적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어와 벨라루스어의 비교】 정보를 제시하는 테이블
【러시아어와 벨라루스어의 비교】
  • 러시아어-벨라루스의 동일 의미의 유사단어(러시아어-벨라루스어)
    • песня - песня (노래 : 뻬스냐 - 뻬스냐)
    • слово - слова (단어 : 슬로바 – 슬로바)
    • сказка – казка (이야기 : 스카즈카 – 카즈카)
    • дорога – дарога (길 : 다로가 – 다로가)
    • хлеб – хлеб (빵 : 흘렙 – 흘렙)
    • дерево - дрэва (나무 : 제레바 – 드레바)
    • рука - рука (손 : 루까 – 루까)
    • солнце - солнца (태양 : 쏜쩨 – 쏜짜)
    • вода - вада (물 : 바다 –바다)
    • кот - кот (숫고양이 : 꼬트 – 꼬트)
  • 러시아어-벨라루스의 동일 의미이나 이질적 단어(러시아어-벨라루스어)
    • юбка - спаднiца (치마 : 유브까 – 스빠드니짜)
    • таможня - мытня (세관 : 따모쥐냐 – 므이뜨냐)
    • картофель - бульба (감자 : 까르따펠 – 불바)
    • рисунок – малюнак (그림 : 리수녹 – 말류낙)
    • деньги – грошы (돈 : 젠기 – 그로쉬)
    • цветы – кветкi (꽃 : 쯔베띄 – 크베트끼)
    • страна – краiна (나라 : 스트라나 – 끄라이나)
    • мальчик – хлопчык (소년 : 말칙 – 흘롭칙)
    • цвет – колер (색깔 : 쯔벳 – 깔레르)
    • туча – хмара (먹구름 : 뚜차 – 흐마라)

여기서, 지금까지 주권국가를 한 번도 이룬 적이 없는 벨라루스가 어떻게 러시아어에 흡수되지 않고 자국어를 유지해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벨라루스라는 명칭을 갖는 국가는 없었지만 벨라루스인들은 리투아니아대공국 또는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보존해 왔었다. 제정러시아 치하에서도 대부분의 벨라루스 지역에서는 벨라루스어가 온존되어 사용되었고 1917년 공산혁명 이후에도 민스크 등 일부 대도시에서만 러시아어가 활용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다만, 소련시대 이래로 러시아어가 중심언어로 일상어가 되면서 벨라루스어의 위상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소련 치하에서도 소수민족 문화 보존정책으로 벨라루스어 교육이 장려되고 학교에서도 러시아어보다 벨라루스어를 더 많이 가르쳤다고 하지만 특히, 도시를 중심으로 러시아어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소련 붕괴와 주권회복 후에도 러시아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벨라루스의 초중고 각급학교에서는 오히려 벨라루스어 보존 차원에서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를 동일한 비중으로 가르치고 있다. 물론, 학부모의 희망에 따라 한 학년의 전 과목을 벨라루스어로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종교

벨라루스의 주된 종교는 동방정교이다(전체 종교인구의 약 80%). 벨라루스 정교회는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청(patriakhat) 벨라루스관구(ekzarkhat)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Filaret 관구장주교(mitropolit)가 관구장을 맡고 있으며, Filaret는 민스크-슬루츠크교구(eparkhia)의 교구장을 겸하고 있다(사진).

관구장을 맡고 있는 Filaret라는 인물의 사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밖에도 벨라루스에서는 가톨릭교, 개신교, 유태교 등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