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교육/역사/동포

문화정보(숨김)

  1. 교육/역사/동포
  2. 문화정보(숨김)
  • 글자크기

[총영사 기고] 훈춘 龍虎閣에서 떠올리는 이순신 장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8-04

 훈춘 용호각에서 떠올리는 이순신 장군

  주선양총영사 신봉섭 

“이순신 장군이 여진의 침략을 물리친 녹둔도가 여기서 보인다구요?”, “네, 저 멀리 동해가 보이고, 두만강 하류와 러시아 땅이 만나는 저 무성한 초원이 바로 녹둔도입니다. 두만강 건너편 나선시 조산리에는 그 때의 공적을 기리는 전승대 기념비가 현재도 보존되어 있지요!”

  지난 초여름 출장길에 현지 가이드가 내게 들려준 설명이다. 조금은 흥분되었다. 중국 동북의 끝자락 두만강 하구에 있는 훈춘시 팡촨(防川) 전망대에서 1차 백의종군했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떠올릴 줄이야! 용호각(龍虎閣)이라 불리는 이 전망대는 북․중․러 3국의 국경이 만나는 두만강 하구를 조망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또한, 근처에는 북한 원정리와 연결되는 중국의 취안허(圈河)통상구가 있어 나선특구와 연변지역간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1587년(선조 20) 경흥부 조산보(堡) 만호 벼슬을 하다가 녹둔도 둔전관을 겸임하게 된 이순신은 그해 가을 여진족의 추수약탈 기습공격에 생애 유일의 패전의 당하고 첫 백의종군에 처해진다. 얼마나 절치부심했을까? 이듬해 녹둔도 침공을 응징하는 여진족 중심지 시전부락 공격에서 이순신은 적장을 사로잡는 공을 세워 가까스로 복직할 수 있었다.

  패배가 장수를 단련시킨다고 했던가! 임진왜란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에게도 한 때의 좌절이 있었고, 그것도 한반도 최북단 작은 섬에서 일격을 당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임진년 대전란을 앞두고 이러한 시련이 주어진 것은 어쩌면 우리 역사에 큰 행운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녹둔도의 실패가 이순신을 천하무적으로 거듭나게 했을 터이니 말이다.

  지금 이곳 용호각 진입로 입구에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중국측의 유람선 부두공사가 한창이다. 400여 년의 시간은 지형마저 바꾸어버렸다. 두만강 하구의 여의도 1.5배 크기 작은 섬이었던 녹둔도는 퇴적작용이 계속되면서 지금은 러시아 영토에 붙어버렸다. 함경도 백성이 건너와 농사를 짓고 소금을 생산하던 녹둔도 둔전이 여진족 부락과 마주해 있던 두만강 하구지역에는 이제 북한, 중국, 러시아 3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 청년무관 이순신이 지켜냈던 그 현장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굴절과 아쉬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여진유민 토벌을 위해 경흥 서수라항을 출발했던 웅도원정(1639)도 녹둔도 근처 어느 섬이었으리라. 2차례 나선정벌(1654, 1658)을 위해 변급, 신유 장군이 각각 두만강을 건넌 곳도 이곳에서 멀지않은 상류가 아니던가! 베이징조약(1860)으로 녹둔도가 러시아에 넘겨진 후 뒷북치며 항의했던 무능함은 또 어떠한가!

  하지만 시대상의 변화는 지리와 국경의 변천만큼이나 분명하다. 역사의 명암이 교차하던 이 지역은 이제 동북아 협력의 새로운 요충지로서 주목받고 있다. 3개국 국경의 교차점,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 경제와 안보의 교차점으로 가히 ‘만남의 광장’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곳을 ‘일대일로’(一 帶一路) 구상의 핵심이 될 동북아 물류 허브로 발전시키고자 훈춘국경경제합작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며, 두만강삼각주 국제관광구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북-러간 육해운송망 확보를 위해 지난해에는 이곳을 지나가는 나진-하산 복합철로가 개통되었다. 지척에 위치한 러시아 자루비노항은 최근 제2기 항구 준공을 마쳤다. 50여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선 경제특구는 아직 변수가 많긴 하지만 활기를 되찾고 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우리의 경제 영토를 넓히고 한반도 평화를 도모하는데 소홀히 할 수 없는 지역이다. 더욱이 유라시아 新실크로드를 선점하려면 말이다. 유라시아 국가와 교류협력을 강화하여 평화롭고 함께 번영하는 경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풍부한 협력 공간을 갖고 있다. 두 거시정책의 접점 역시 바로 이곳이 아닐까!

  눈앞에 녹둔도 인근 하산역을 출발한 열차가 무심히 두만강 철교를 건너간다. 전승대 위에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던 이순신 장군의 시선이 머물렀을 이 지역은 이제 전장이 아니라 동북아 번영을 위한 새로운 협력 공간이자 연결의 현장이 되었다. 한반도와 중국 동북3성, 그리고 러시아 극동이 만나는 이 곳에 평화지대를 조성하여 동북아의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작업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이러한 작업은 어쩌면 400여년 전 녹둔도를 지키기 위해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 피를 흘렸던 이순신 장군의 염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이 순간에도 이순신 장군은 살아있다. /끝/

기사원문 보기: 문화일보 7.29 기고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