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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

작성자
주영국대사관
작성일
2008-09-12

1. 로마의 지배 및 잉글랜드의 통일

BC 6C경 북부 유럽에서 Celt족이 침입하여 처음으로 영국에 정착하였으나, BC 55년 Julius Caesar의 침입 이후 AD 4C까지 로마의 지배를 받음. 449년 Jutes, Angles, Saxons가 침입하여 Celt족을 Wales, Scotland 지방으로 몰아내고 Wessex, Kent, Mercia 등 7개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828년 Wessex왕 Egbert가 England 지방에 통일왕국을 수립함.

 

2. 노르만 정복

  1066년 프랑스 Normandy 공국(바이킹국가)의 Duke William of Normandy에 의한 England 정복으로 Norman 왕조가 수립되어 처음으로 강력한 행정, 군사적 체제를 갖추고 England를 지배하기 시작하였으며, 1282년에는 Edward Ⅰ가 Wales에까지 왕권을 확대함.

  1215년 John 왕은 현 영국헌법의 효시인 Magna Carta(대헌장)에 서명하였고, 1265년에는 의회민주주의의 효시가 된 영국 하원이 탄생함. 1338년 Edward Ⅱ의 프랑스 왕위 요구로 발발한 영.불 백년전쟁(1338~1453)에서 영국이 패배하여 프랑스 영토를 상실하였고, 그 이후 얼마되지 않아 1461년 Edward Ⅳ의 즉위로 York 왕조가 시작됨. 1534년 Tudor 왕조의 Henry Ⅷ가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발표하여 로마교회로부터 독립된 국교회(Church of England)를 창립하면서 영국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으며, 그후 Stuart, Hanover 왕조를 거쳐 현재의 Windsor 왕조에 이르고 있음.

 

3. 웨일즈의 통합

  5세기 Anglo-Saxon족에게 쫓긴 Celt인들이 정착하면서 역사가 시작된 Wales는 12세기 중반 Henry II의 원정, 13세기말 Edward I의 지배를 거치면서 점차 잉글랜드와 가까워져 감. 1485년 Tudor 왕조를 연 Henry Ⅶ가 웨일즈 출신이었기 때문에 1485년 이후 England와의 통합을 크게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1535년 Act of Union에 따라 정치적으로 England에 완전 통합됨.

 

4. 스코틀랜드의 통합

  Scotland는 1603년 Scotland왕 James Stuart(James Ⅵ)가 England 왕(JamesⅠ)에 취임함으로써 영국 왕실에 통합되었음(이때부터 England, Wales 및 Scotland를 합쳐서 Great Britain으로 부르게 됨). 그러나 양국의회는 1707년에야 통합되었으며 Scotland는 계속해서 독자적인 법률체제와 교회를 유지해 오고 있음.

 

5. 아일랜드 지배 및 독립

  Ireland는 1169년 England왕 Henry Ⅱ에 의해 정복된 바 있으나 지리적, 종교적 이유로 England의 직접통치가 효과적으로 미치지 못하여 반란이 빈번했으며, 1607년 북부 Ulster 지방 중심의 반란이 종결된 후 Scotland 및 England로부터의 대규모 이민이 시작됨. 

1801년에는 Great Britain과 Ireland 두 의회의 통합으로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가 탄생함. 1916년 아일랜드 독립운동(Nationalist Uprising)이 진압된 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Irish Republican Army(IRA)로 알려진 게릴라군이 결성되어 독립전쟁을 개시하여 1921년에는 북부 Ulster 지방의 6개주만 British Parliament의 최고권위하에서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영국의 일원으로 남고, 나머지 3개주 및 남부 Ireland가 독립하여 아일랜드 자유국(Irish Free State)을 구성하였으며,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함. 1928년 이후 영국 국호는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6. 영국의 식민지 개척사

  영국은 1600년대 초 인도 식민지 확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 식민지 개척활동에 나섰으며, 특히 20여년에 걸친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을 종결지은 1815년 비엔나 체제의 주도국으로서 세계 식민지 건설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

  영국은 유럽에서의 주도적 지위 확보를 바탕으로 18세기 후반기부터는 그 동안 식민지개척에서 각축을 벌었던 프랑스를 물리치고 아시아, 중동,아프리카, 대양주, 북미 등 전세계 100여개 지역을 지배 하에 둔 대영제국을 건설함.

  영국의 식민지들은 1900년대 초부터 자치령 형식으로 독립하기 시작했으며, 1, 2차 대전을 거치는 동안 13개의 속령을 제외한 모든 식민지들이 독립하게 됨.

 

7. 북아일랜드

  1921년 독자적인 의회 구성이후 다수파인 신교 Unionists가 북아일랜드 의회 및 정부를 장악하여 왔으나, 소수파인 카톨릭 교도들이 정치·사회 각 분야에서의 차별대우에 불만을 표명하기 시작하여 1960년대 후반이후 카톨릭 파들은 적극적인 대항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음. 양 종파간 분쟁이 유혈사태를 빚음에 따라 1969년에는 군부가 평화유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나, 1970년 카톨릭 극렬 세력이 이에 대항하여 Official IRA에서 분리, 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라는 테러단체를 조직하여 폭력에 의한 북아일랜드 독립을 추진함.

  1972년에 이르러 영국정부가 사태수습을 위해서는 영국 의회와 정부가 직접 북아일랜드의 법질서유지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결정하자, 북아일랜드 의회 및 정부가 해산함으로써 영국정부에 대한 북아일랜드 직접 통치가 시작됨.

  1998년 4월 10일 Belfast에서 Blair 총리 및 아일랜드의 Ahern 총리의 신.구교계 제 정파대표간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이 타결됨으로써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주장해 온 구교계와 영국 잔류를 고수해 온 신교계간에 1969년이래 계속되어온 유혈분쟁 종결을 위한 역사적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전면이행을 통한 완전한 평화달성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

  2006년 10월 신·구교계 정파간 권력공유를 골자로 하는 St. Andrew 합의가 도출되면서 자치정부 복원을 위한 돌파구가 마련되었으며, 2007년 3월 자치의회 선거를 거쳐 같은 해 5월 신·구교계간의 공동정부 체제가 출범함으로써 평화정착의 제도화를 이루게 됨.

 

8. 2차대전 이후의 양당정치

  1945년 7월 총선거에서 대승한 노동당의 Attlee 내각은 주요산업의 국유화, 사회보장제도 등 사회복지정책을 채택했으나, 지나친 내핍생활 요구로 인한 국민불만 및 당내분으로 1951년 선거에서 보수당에게 패배함. 1951년 이후 계속 집권한 보수당은 1964.10. 선거에서 패배하여 노동당의 Wilson 내각이 구성됨.

  그 후 경제사정의 악화로 1970.6. 선거에서 보수당이 승리함으로써 Heath 내각이  집권하였으나, 1973.10. 제4차 중동전을 계기로 엄습한 석유파동과 에너지 위기 속에 광산 및 운수노조의 파업으로 촉발된 경제위기의 타개책으로 조기 실시된 1974.2. 선거에서 보수당이 패배함으로써 노동당이 다시 집권하게 됨.

  1974.2. 집권한 노동당정부의 임금인상제도를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의 실패와 1979.3. 실시한 스코틀랜드 및 웨일즈지방 자치허용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여론 등으로 1979.5.3 총선에서 Thatcher 당수 영도하의 보수당 정권이 수립됨. 1983.4 Falklands 전쟁 승리 직후 1983.6.9 실시된 선거에서 보수당 정부는 과반수를 72석이나 상회하는 압승을 거두어 2기 연속 집권에 성공함.

  보수당 경제정책 성과에 대한 국민의 평가, 1987.3. 영·소 정상회담을 통한 Thatcher 총리의 대외 이미지 제고 및 노동당의 비핵 방위 정책으로 인한 노동당 지지 하락 등으로 보수당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자 보수당은 총선을 예정보다 1년 앞당겨 1987.6.11에 실시, 19세기초 이후 160년 만에 3기 연속 집권에 성공함.

  총선에서 안정적 의석 수를 확보한 보수당은 소위 “Thatcherism”에 입각, 경제·교육·의료 등 제 분야에서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 나감. 그러나 Thatcher 총리의 주민세(Poll Tax) 도입추진에 대한 여론 악화, 강경한 반 EC 정책이 유발한 당내 갈등 심화 등으로 결국 1990.11. Thatcher 총리가 사임하고 보수당 경선을 통해 Major 재무장관이 후임 총리에 취임함.

   Major 총리는 대 EC정책, 주민세, 사회보장문제 등에 있어 Thatcher 총리 보다 유연성 있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당내 불화를 극복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었으며, 1991.12. Maastricht 조약체결 회의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고 1992.1. 안보리 의장국 수임중 대소 지원문제를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등 국제적인 이미지 제고에 성공하여 1992.4.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보수당은 역사적인 4기 연속 집권의 위업을 달성함.

  그러나 보수당 장기 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 유럽통합 문제를 둘러싼 보수당의 내분 등으로 1997.5.1 실시된 총선에서 Blair 당수가 이끄는 노동당이 압승함으로써 18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며, Blair 총리는 재임기간중 달성한 정치·행정 개혁, 안정적 경제성장 등 업적을 바탕으로 임기보다 1년여를 앞당겨 2001.6.7 총선을 실시하여 또다시 압승함으로써 노동당 역사상 최초로 2기 연속 집권을 달성함.

  2005.5.5 치러진 총선에서도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여, 노동당은 지난 1997년부터 3회 연속 집권에 성공했고, 블레어 총리는 노동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한 총리로 기록됨. 그러나 의석수는 줄어들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블레어 총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것임. 보수당은 97년 노동당에 집권당 자리를 내준 이후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으나, Michael Howard 보수당 당수는 3연속 선거패배를 인정하고 사임 입장을 밝혔으며, 보수당은 2005.12월 David Cameron 신임당수를 선출함.

  Blair 총리는 3기 집권 이후에도 각료들의 잇단 실책과 각종 스캔들, 중동 정책에 대한 국내 비판여론 등으로 지지도가 하락하고 조기 퇴진 압력이 점증하면서, 결국 2006.9월 향후 1년 내에 사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힘..

  2007.6월 Blair 총리의 퇴임 의사 발표 후 Brown 재무장관이 단독 후보로서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고 이어 총리직을 승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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