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부다페스트에는 81개 대사관과 18여개의 국제기구가 소재, 1999년에 NATO에 가입, 2004.5.1 EU 가입
유럽 대서양협력강화, 인접국과의 우호·친선관계 유지, 인접국 거주 헝가리계 소수민족 권익보호를 대외정책 주요기조로 추진
시 차 : 한국보다 8시간 늦음 ※ 3월 마지막 주 일요일~10월 마지막 주 일요일까지 실시되는 서머타임 기간의 시차는 7시간)
비 자 : 관광목적으로 3개월까지 무비자 입국, 체류가능
헝가리 약사
고대국가 형성
언어, 고고인류학적 연구에 의하면 Magyar족의 조상은 BC. 3000년경 볼가 강과 우랄산맥 사이의 스텝지방에 거주한 Finno- Ugric의 일파로서 AD.3-5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남부
러시아 스텝지방을 거쳐 흑해 북쪽 볼가 강과 돈강 유역에 정착함.
서기 600년까지의 헝가리 역사는 언어학적·고고인류학적 추정일 뿐이며,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서기 700~750년부터임.
9세기경 Árpád를 중심으로 민족공동체를 결성, 896년경 현재의 위치(카르파티안 분지)로 이주, 서유럽으로 영토 계속 확장시도중, 955년 Augusburg 근교에서 독일 국왕 오토
1세에 패퇴, 현 헝가리 평원에 영구 정착하게 됨.
Árpád의 손자 Géza는 대지주로 왕국 설립의 기반을 확립하였으며, Géza의 아들 이슈트반(St. István, 제위 : 997-1038)은 헝가리 왕으로 즉위, 교황 Sylvester로부터 왕관을
받음. 이를 계기로 헝가리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유럽 기독교 국가에 합류함.
몽고 및 터키의 침입
13세기 바투를 선도로 한 몽고 정복군이 헝가리를 침공, 헝가리의 전역이 유린되고 황폐화됨.
14~15세기에는 마챠슈(Mátyás) 대왕의 강력한 리더쉽하에 중부유럽의 강대국으로 성장, 르네상스문화의 꽃을 피웠으나, 이후 귀족세력의 부상에 따른 왕권약화로 인해 국력이
쇠퇴함.
이후 터키 세력이 확장, 1526년 슐레이만(Suleiman) 휘하의 터키군이 헝가리 영토내로 침공을 개시하여 모하치 전투에서 헝가리 왕(Lasjos Ⅱ)이 전사하고, 헝가리군이 대패함.
1541년 이후 터키군은 당시 헝가리의 수도 “부다”를 점령함으로써, 국토의 대부분이 터키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서부 일부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에 귀속되었으며,
17세기말에는 전 헝가리가 합스부르크가의 영향하에 들어감.
합스부르크가 통치와 독립 전쟁
프랑스 혁명 이후, 19세기 초 민족의식이 고조되어 1848년에는 Lajos Kossuth를 중심으로 국민군을 조직, 합스부르크가에 대해 무력 항쟁을 전개하였으나, 지도부의 내분과
러시아의 오스트리아 지원으로 실패함.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Dual Monarchy) 시대
1866년 오스트리아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헝가리인의 저항운동이 가열될 것을 우려, 유화정책을 시도하여 1867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간 화해 협정이 체결됨.
이로써 헝가리는 일견 내정상 독립을 회복한 듯하였으나, 오스트리아 황제를 헝가리 왕으로 섬기는 2중군주국(Dual Monarchy)으로 바뀌었으며 이러한 이중군주국의 형태는
1918년 합스부르크왕조의 해체시까지 지속됨.
이중제국시에는 헝가리는 입법, 행정, 사법을 갖는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외교, 국방 및 연방 재정문제에 관해 오스트리아와 공동 행정 체제를 갖게 되었으나, 인구와
국부면에서 우월한 오스트리아가 외교, 국방분야에서 강한 발언권을 행사함.
1·2차 세계대전
1914.6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였고, 1918.11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고 공화국 선포
제1차 세계대전 종전후 1920.6.4 Trianon 조약에 따라 헝가리는 국토의 71%, 인구의 60%를 인접국에 양도하게 되어 유럽의 약소국으로 전락함. 이에 따라 실지회복을 최대의
외교 목표로 삼게 되고 2차대전시 주축국에 가담하는 계기가 됨.
1941.6월 독일의 소련 침공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나, 헝가리의 반 나치 감정 및 전선이탈 동요 등을 우려한 독일은 1944.3월 헝가리를 완전 점령함.
공산정권 시대
1944.12.22 Debrecen에서 소련 지배하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945.1.20 헝가리는 연합군과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동년 11.4 총선거를 실시, 1946.1월 신헌법을 제정하고,
동년 2월에는 공화국을 선포함.
소련 주둔군의 지원으로 공산당은 각 국가기관에서 세력팽창을 도모하여 1949.5월 총선이후 정권을 장악,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소련의 위성국화 함.
Stalin 사후 1953-1955년간 온건노선을 주장하는 Imre Nagy 수상하에 자유화 정책이 추진되었으나 1956년 제20차 소련 공산당대회에서 반스탈린 노선 채택을 계기로 스탈린식
강압주의를 지향하는 Rákosi파와 온건노선을 주장하는 Nagy파간의 암투가 격화됨으로서 국내 경제파탄을 초래함. 급기야 1956.10.23 부다페스트에서 대학생, 노동자 등이
주도하는 대규모 민중 폭동이 발생됨.
동“헝가리 봉기”로 Eerő Gerő 제1서기는 해임되고, 수상도 온건한 Nagy로 교체되었으나 사태는 폭동으로 확산되면서 점차로 반공·반소화 됨. 정부도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 및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즉각 소련군이 무력개입, 동년 11.3 Kádár를 당 제1서기 및 수상으로 하는 새로운 정부가 등장함.
Kádár 정부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계속 잔류하고, 소련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의 신뢰회복을 위해 개방정책을 취하는 동시에 1968년에는 경제개혁 정책을 시도함.
체제전환
1985.3월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으로 헝가리는 정치·경제·사회 등 전분야에 걸친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으며, 1988년초 Kádár
서기장이 퇴진하고 Grósz가 실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급진적 개혁주의자인 Pozsgay가 정치 일선으로 복귀함으로써 헝가리 개혁은 본격화됨.
1989년에는 정치개혁이 더욱 가속화되었고, 그해 6월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당 지도체제를 단일 지도 체제에서 4인 집단 지도체제로 개편하고 본격적인 정치개혁의
기틀을 마련함.
1989.10월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전당대회를 개최, 스스로 일당통치체제를 포기하고 당명도 서구식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헝가리 사회당으로 변경함으로써 공산통치를
종식시킴.
1989년 체제전환 이후
1989.10.19 헝가리 의회는 내각책임제로의 전환 및 헝가리 공화국으로의 국호 변경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키고, 1989.10.23 “헝가리 공화국(The Republic of
Hungary)”으로 국호를 개칭함.
1990.3.25 및 4.8 다당제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자유총선을 실시한 결과, 헝가리 민주포럼이 승리하고 헝가리 사회당(구공산당)은 그간의“위로부터의 개혁”노력에도 불구,
제4당으로 전락함.
1990.5.23 중도우파 성향의 헝가리 민주포럼의 주도하에 독립소지주당 및 기독민주국민당이 참여하는 신연립 정부가 출범하게 됨. 9.3 의회 간선결과 자유민주연맹 소속 Árpád
Göncz가 헝가리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됨.
1994.5월에 자유총선을 실시한 결과, 제1여당인 헝가리 민주포럼이 참패한 반면 헝가리 사회당은 총 386의석중 단순 과반수를 상회하는 209석을 획득, 제1당으로 부상함.
1994.7월에 헝가리 사회당과 자유민주연맹간 연립정부가 출범하고 1995.6월 Göncz 대통령이 의회에서 재선됨.
1998.7월 총선결과 청년민주동맹(Fidesz)이 승리하여 독립소지주당 및 민주 포럼과 연정을 구성하고 8월에는 약관 35세의 Orbán 총리내각이 출범함.
2002.4월 총선에서 사회당-자유민주연합을 중심의 중도좌파정당이 승리, 연정구성 재집권, 5월 Medgyessy 총리 내각 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