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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 루아얄(Palais Royal)의 역사

작성자
주 오이시디 대표부
작성일
2024-03-25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의 역사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은 17세기 루이 13세 당시 수상이었던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 de Richelieu)의 저택이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루브르 궁전과 가까이 위치해 있던 렁부예(Rambouillet) 저택을 리모델링 했으며, 1637년부터는 극장도 만들어서 극작가 몰리에르의 연극을 상연하기도 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1642년 사망하면서 자신의 저택을 루이 13세에게 양도했다. 다음해 루이 13세가 사망하자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 왕비가 자신의 두 아들인 루이 14세와 필립 도를레앙(Philippe d'Orléans)과 함께 이 저택에서 지내게 되면서 왕궁이라는 뜻의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1649년 1월 5일 밤 프롱드의 난으로 인해 안 도트리슈 왕비가 팔레루아얄을 떠나 생제르망 앙레(Saint-Germain-en-Laye)로 피신을 갔던 기억 때문에 훗날 루이 14세는 팔레 루아얄을 놔두고 베르사유 궁전을 짓게 되었다.


1692년 팔레 루아얄은 루이 14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에게 돌아갔으며, 1722년 루이 15세 대관식 때까지 팔레 루아얄은 당대 프랑스의 정치와 예술의 중심부 역할을 했다. 그 후, 팔레 루아얄은 1781년 오페라 건물 화재 이후 신축되었다. 맨 아래층은 상인들에게 세를 주었으며 1786년에는 극장을 새로 지어서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 극장이 탄생하게 되었다.


팔레 루아얄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틀 전인 7월 12일에 혁명파 카미유 데물랭(Camille Desmoulins)이 군중들에게 무기를 들라고 촉구했던 곳이기도 하다. 팔레 루아얄은 1814년 훗날 왕이 된 루이 필립(Louis-Philippe)에 의해 상점, 식당 등이 즐비한 회랑으로 변모했으며, 발자크의 작품 『인간 희극(Comédie humaine)』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1848년 루이 필립이 폐위되고 1871년 파리 코뮌 기간 동안 화재가 발생한 이후, 팔레 루아얄은 국무원(Conseil d’État) 건물이 되었다가 1958년에는 헌법위원회, 1959년부터는 문화부 건물이 되었다.


20세기에 팔레 루아얄 정원은 문필가들이 애호하던 공간이기도 했다. 1986년에는 예술가 Daniel Buren의 작품인 «Les Deux Plateaux»라는 제목의 현대식 조형물이 설치되었으며, 오늘날 뷔렌 기둥(Colonnes de Buren)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주요 내용 요약 및 참조


팔레 루아얄의 역사(Histoire du domaine national du Palais-Royal), 팔레 루아얄 웹 사이트, https://www.domaine-palais-royal.fr/decouvrir/histoire-du-domaine-national-du-palais-royal 


팔레 루아얄과 프랑스 혁명(Le Palais-Royal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프랑스 국립도서관 웹 사이트, https://passerelles.essentiels.bnf.fr/fr/image/50081f0d-431b-4df7-9542-6324107ed086-palais-royal-et-revolution-francaise 

 


작성 : Jynghan10@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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