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 대학의 역사
소르본(Sorbonne) 대학은 중세시대 세느강 좌안에 설립된 파리 대학(Université de Paris)에서 기원한다. 초창기 파리 대학은 시테섬의 노트르담 학교와 경쟁하면서 성장했다. 1200년 필립 오귀스트(Philippe Auguste)가 대학을 왕실 재판으로부터 면제하기로 결정하면서 파리 대학이 최초로 공식 인정되었고 1231년 이후 대학이 자치권을 가지게 되었다.
신학, 법학, 의학, 교양 학부로 구성된 파리 대학에는 유럽 각지로부터 학생들이 유입되었으며 중세시대 파리가 유럽에서 중요한 학문과 교육의 중심지 중 하나로 인정받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교수와 학생들이 라틴어를 사용하여 교육을 진행하면서 파리 대학 주변의 대학가 동네는 라틴 지구(Quartier Latin)로 불리게 되었으며, ‘까르티에 라탱’이라는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파리 5구-6구의 대학가를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생트 쥐느비에브(Sainte-Geneviève) 언덕에 세워진 여러 콜레주들(collèges) 중에서도 13세기 신학자 로베르 드 소르봉 (Robert de Sorbon)이 설립한 콜레주가 소르본 대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 라틴 지구 대학가의 가난한 학자였던 로베르 드 소르봉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자 했다. 로베르 드 소르봉에 의해 1253년 설립된 신학 교수 학생 공동체는 1257년 왕실로부터 인정을 받은 후 주요 신학 학부가 되었으며 그 명성은 파리 대학이 유럽에 널리 알려지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1622년 리슐리외 추기경이 소르본 콜레주(collège de Sorbonne)의 총장을 맡으면서 건축가 자크 르메르시에(Jacques Lemercier)에 의뢰하여 소르본 대학의 건물을 확장 및 개조하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 혁명 이후 1793년 폐지되었던 학부들이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다시 복원되었으며, 1896년 프랑스 전국 대학 재조직에 따라 여성을 포함한 대중 학생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었다.
1968년 5월의 Mai 68 운동 이후, 1971년 파리 대학은 13개 대학으로 나뉘어지게 되었으며, 파리 1대학(Université Panthéon-Sorbonne), 파리 3대학(Université Sorbonne Nouvelle), 파리 4대학(Université Paris-Sorbonne)의 명칭에 ‘소르본’이라는 단어가 포함되게 되었다. 2018년부터 파리 4대학은 파리 6대학(피에르 마리퀴리 대학)과 병합하여 Sorbonne Université로 불리고 있다.
주요 내용 요약 및 참조
역사(Histoire), 소르본 대학 웹 사이트, 2019년 11월 30일, https://www.sorbonne-universite.fr/universite/histoire-et-patrimoines/histoire
대학의 역사(Histoire de l'université), 팡테옹-소르본 대학 웹 사이트, https://www.pantheonsorbonne.fr/universite/presentation/histoire-luniversite
Claude Quétel. 로베르 드 소르봉(Robert de Sorbon), Historia, 2011년 10월 1일, 2023년 8월 20일 업데이트, https://www.historia.fr/personnages-historiques/biographies/robert-de-sorbon-2056389
작성 : Jynghan10@mof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