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도서정가제
프랑스의 도서 시장은 과거 출판사가 ‘권장 소비자가(prix conseillé)’를 제시하면 서점이 자율적으로 최종 판매가를 정하는 방식의 자유 경쟁에 맡겨져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Fnac과 대형마트 등에서 인기 도서에 최대 40% 할인을 적용하며, 중소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대형마트와 서점 간 치열한 가격 경쟁은 출판 생태계의 심각한 불안정을 초래했고, 이에 서점계 및 출판사 등 관련 단체에서 ‘책은 단순 소비재가 아닌 문화적 자산’이라고 하며, 무분별한 가격 덤핑이 결국 베스트셀러 위주의 획일적 출판으로 이어지고, 신진 작가와 소량 출판물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혼란을 잠재운 것이 바로 1981년 8월 10일 제정된 ‘랑 법(Loi Lang)’이다. 당시 문화부 장관 잭 랑(Jack Lang)이 주도한 이 법은 출판사나 수입업자가 도서의 소비자 판매 가격을 결정하고, 모든 판매처에서 할인 폭을 5% 이내(도서관 등 공공기관은 최대 9%까지)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도서정가제는 도입 당시 우려되었던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고,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서점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2023년 기준 독립 서점만 약 3,500개에 이른다. 랑 법은 전국적으로 촘촘한 서점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베스트셀러에만 치중되지 않는 출판 다양성을 확보, 시민들이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문화적 평등을 실현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이후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프랑스는 2011년 법으로 전자책 가격 역시 도서정가제를 적용했다. 또한 2014년 7월 8일, 소위 ‘안티-아마존법’을 제정해, 온라인 서점의 5% 할인과 무료 배송 적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배송비 0.01유로’라는 사실상 편법에 가까운 배송서비스를 제공하며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2021년 12월 30일, 도서 배송비의 하한가를 설정하는 ‘다르코스 법(Loi Darcos)’을 제정했다. 2023년 10월 7일부터 시행된 규정에 따르면 35유로 미만 도서 주문 시 최소 3유로의 배송비를 반드시 부과해야 하며, 35유로 이상 주문시에도 배송비가 완전히 무료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배송비 하한제가 시행되자 아마존은 2024년 11월부터 ‘무인 보관함(lockers)’을 통한 도서 ‘무료 수령’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책 가격법 준수를 감독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프랑스 ‘도서 중재자(le médiateur du livre)’는 2025년 두 차례 권고를 통해 일반 매장 내 픽업 포인트를 통한 도서 수령 가능성은 인정하고 있으나, 무인 보관함을 통한 무료 수령은 입법 취지를 훼손하고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고 판단했다.
40년 넘게 이어져 온 프랑스의 도서정가제는 단순한 가격 규제를 넘어, 책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하나의 문화적 생태계로 바라보는 프랑스의 오랜 신념을 바탕으로 디지털 플랫폼의 독점을 막고 출판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켜온 정책으로 평가된다.
주요 내용 요약 및 참조
https://www.legifrance.gouv.fr/loda/id/LEGITEXT000006068716/
작성: hysong16@mof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