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130주년, 알거나 또는 모르는 이야기
프랑스의 상징,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에펠탑은 지난 5월 130주년을 맞았다. 에펠탑 아래에서는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9월 28일부터 11월 24일까지 무료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프랑스 언론 Le Parisien은 130주년을 기념해 에펠탑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 10가지를 소개하였다.
1. 에펠탑은 1889년 만국박람회가 열리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박람회장 입구에 설치된 에펠탑은 보는 이들을 모두 놀라게 하였다.
2. 에펠탑을 처음 구상한 사람은 귀스타브 에펠이 아니다.
에펠탑의 이름은 건축가 귀스타브 에펠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된 것이지만, 처음 에펠탑을 구상해낸 것은 귀스타브 에펠의 협력자였던 엔지니어 에밀 누기에(Emile Nouguier)와 모리스 코에쉴랭(Maurice Koechlin)이다. 처음 귀스타브 에펠은 거대한 철제탑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이후 이들과 함께 시공을 위한 특허를 신청하였다.
3. 당시의 유명 작가, 예술가는 에펠탑이 세워지는 것을 반대했다.
유명 소설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오페라 극장을 건축한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 등 당시 유명인사들은 낭만의 도시 파리의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에펠탑이 세워지는 것을 반대해 신문에 반대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4. 에펠탑 시공기간 동안에는 인명사고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2년 2개월 5일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완공된 에펠탑은 거대하고 도전적인 프로젝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사고 없이 완공되었다. 시공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인부는 단 한 명도 없었으나 시공과는 상관없이 퇴근 시간 이후 여자친구 앞에서 자랑을 하기 위해 탑에 올라갔다 목숨을 잃는 인부가 한 명 있다고 한다.
5. 에펠탑은 일시적으로 세운 건축물이었다.
에펠탑은 만국박람회 종료 후 20년까지만 유지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귀스타브 에펠은 자신이 세운 탑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이후 에펠탑의 다양한 유용성을 증명하여 탑을 보존할 수 있었다. 에펠탑은 기상관측 연구소, 항공 연구소, 군사통신과 라디오 송신탑 등 다양하게 쓰이며 시대가 바뀜에 따라 현대기술과도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6. 1918년, 에펠탑은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 통신 수단으로 쓰였던 에펠탑은 독일군의 암호 메시지를 감청하였고 프랑스군은 콩피엔뉴 숲(forêt de Compiègne)을 공격할 것을 미리 알아내고 역습할 수 있었다.
7. 프랑스 최초의 TV 방송은 에펠탑으로부터 송출되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최초의 TV 방송(영상이 아닌 방송 프로그램)이 에펠탑으로부터 군병원으로 송출되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 내 총 TV 개수는 100여개 정도였다고 한다.
8. 에펠탑은 17겹의 페인트칠로 덮혀있다.
에펠탑은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총 17겹의 페인트칠로 덮혀 있다. 페인트칠은 계속해서 벗겨지기 때문에 7년마다 주기적으로 페인트를 덧칠한다. 현재 에펠탑을 덮고 있는 페인트의 무게는 50톤이다. 파리시는 머지않아 에펠탑의 페인트를 일부 긁어내고 새로 칠하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9. 에펠탑은 르발루아 페레(Levallois-Perret)에서 나뉘어 만들어졌다.
에펠탑을 이루는 철조각 및 부품은 파리 북서부 외곽에 위치한 르발루아페레의 공장에서 제작되었으며 일부분 조립되었다. 이후 제작된 철조각을 샹드마르스까지 수레로 옮겨 현장에서 고정하였다. 에펠탑을 고정시키는데 사용된 리벳의 개수는 총 250만개이다.
10. 에펠탑 아래에는 거대한 풍동시험 장치가 있었다.
항공과학에 심취했던 귀스타브 에펠은 탑 아래 거대한 풍동시험 장치를 설치하고 항공기 동체의 공기 저항력을 실험하였다. 1912년 풍동시험 장치는 파리 16구의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