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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알기

이탈리아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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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개관

국명

  • 이탈리아 공화국 (Repubblica Italiana, Italian Republic)

기후

  • 지중해성 기후 (연평균 15.6℃)

면적

  • 302,072 ㎢ (한반도의 1.5배)

인구

  • 6,200만명(2019년 현재)

언어

  • 이탈리아어

수도

  • 로마(인구 287만명)

종교

  • 가톨릭(인구의 약 86%)

국경일

  • 6월 2일(공화국 선포기념일)

정치체제

  • 민주공화제

국가원수

  • 대통령(Sergio Mattarella, 2015년 2월 취임)

정부형태

  • 내각책임제: 총리(Giorgia Meloni, 2022년 10월 취임)

의회

  • 양원제
    • 상원: 315석(임기 5년의 선출직 315석, 종신직 6명 별도)
    • 하원: 630석(임기 5년)

이탈리아 과거 정세

1. 초기 7왕국 시대 (BC 753-BC 509)

BC 753년 로물루스에 의해 로마가 창건된 이후 BC 8C경부터 에투르스키 왕조를 포함한 7왕국 시대 형성

2. 로마 공화정 시대 (BC 509-BC 27)

BC 3C경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 BC 146년까지의 카르타고, 마케도니아 병합 과정에서 집정관의 장기 독재화 현상이 대두하였으며 삼두정치(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를 계기로 공화정 약화

3. 로마 제정 시대 (BC 27-AD 476)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BC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란 칭호를 받고 황제로 추대되면서 제정시대 개막 BC 27-AD 180년간 로마제국 최고의 번영과 평화(Pax Romana) 구가

AD 180년 이후 사회 기강의 이완, 변방 속국의 반란, 게르만 민족의 압박 등으로 로마는 점차 쇠퇴. AD 395년 동․서 로마로 분열되며 서로마는 AD 476년 게르만 출신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

4. 중세 도시국가 시대

  • 도시국가의 형성 (11-16세기)

    서로마제국 멸망 후 이탈리아는 동고트족,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롬바르드족, 프랑크왕국의 지배를 거쳐, 962년 오토 1세에 의해 성립된 신성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나 11세기 이후 황제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황제와 교황간의 세력 다툼이 격화되는 가운데 지방영주가 통치하는 도시국가(베네치아, 제노바, 밀라노, 피렌체 등) 출현

  • 도시국가의 쇠퇴 (16세기-19세기 초)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하여 활발한 학문,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며 도시국가의 세력이 확장되다가 1453년 동로마제국의 멸망 후 터키의 지중해 진출과 스페인, 프랑스 등 절대군주제 하의 강력한 신흥국가 등장으로 베니스, 제노바 등 무역으로 번성했던 도시국가들이 쇠퇴하게 됨

5. 이탈리아 국가 통일 (19세기 초)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인들은 1820년대 결사조직(Massoneria), 카르보나리당(Carboneria) 등의 비밀조직 활동을 해 오다가 1831년 마치니가 결성한 이탈리아 청년당을 중심으로 외세로부터의 독립과 국가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

1848년 이후 사보이 왕국의 에마누엘레 국왕과 카보우르 재상, 가리발디 장군이 중심이 되어 프랑스, 오스트리아와의 외교교섭 및 3차에 걸친 독립전쟁을 거쳐 1870년 이탈리아 반도통일

6. 파시스트 정권 시기 (1924-1944)

제1차 세계대전 후 경제침체와 정치 불안이 심화되면서 1923년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정권 대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추축(Axis) 동맹을 맺게 되나 북아프리카 진출 이탈리아군이 연합군에 패퇴하고 1943년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하자 권좌에서 쫓겨나고 바돌리오 임시정권(1943.7- 1944.2)이 발족

이후 무솔리니는 독일의 지원으로 북부에서 명목상의 정권을 유지하나 연합군의 이탈리아 공략이 절정에 달한 1944년 항독 게릴라에 의해 살해되며 이에 따라 파시스트 세력도 완전히 붕괴

1946.6월 제헌의회 구성, 국민투표 실시 후 1948.1.1 공화국 헌법을 정식 공포

7. 기민당 주도 연립정부 시기 (1948-1994)

1948년 공포된 공화국 헌법은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공산당 집권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비례대표제’를 도입

제1당인 보수 기민당이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중소정당이 난립하자 기민당이 연정을 구성하여 40여 년간 집권. 기민당 장기집권에 따른 정경유착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해 종전 100% 비례대표제를 수정하여 총의석의 75%를 소선구제로 선출하는 내용으로 선거제도 개정

8. 정계 재편 이후 (1944-2013)

  • 베를루스코니 우파 연립정부 (1994.3)

    1994년 새 선거제도에 의해 실시된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Berlusconi)의 전진이탈리아당 등 우파연합이 중도우파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구 공산당 등의 좌파연합을 누르고 집권

  • 프로디 좌파 연립정부 (1996.5)

    우파연립정권의 구태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에 따라 1996년 실시된 총선에서 전후 최초의 좌파연립내각이 출범

    비정치인 출신의 프로디(Prodi) 총리는 1996.5월-1998.10월간 내각을 이끌며 유로화 참여를 위한 경제 개혁에 성과를 거두었으나 재건 공산당의 연정 지지 철회로 집권 중단

  • 베를루스코니 2,3기 중도우파 연립정부 (2001.6, 2005.4)

    2001년 5월 총선에서 정치 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베를루스코니의 중도 우파연합이 승리하였으나 경제 침체, 이라크 파병 등으로 인해 2005년 지방선거에 참패

    2005년 4월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새로운 내각을 구성함과 동시에 세금 인하, 기업 경쟁력 제고, 남부지역 실업해소 등 경제․사회정책 쇄신을 통해 2006년의 총선에 임한다는 전략을 추진했으나 재집권에는 실패

  • 프로디 2기 중도좌파 연립정부 (2006.5)

    경기 부진 속에서 집권한 중도좌파연합의 프로디 신정부는 ‘유럽중심주의 대외정책’ 및 ‘이라크 철군’등을 추진하고, 재정적자 감축, 시장자유화 정책 강화, 경제회복 등 성과 달성

    긴축재정 및 높은 세금 징수는 경제계의 반감을 사기도 했으며, 2008년초 중도좌파연합의 결속력 약화로 집권 마감

  • 베를루스코니 4기 우파 연립정부 (2008.5)

    우파연합을 결성하여 2008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집권 초기에는 안정적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였으나, 세계금융위기에 따른 마이너스 성장 및 긴축재정예산 편성 등 비인기 정책 실시로 인해 사회 각계의 저항에 직면하였고, 총리 개인의 사생활 문제와 민·형사상 소추 문제로 여론도 악화되어 2011년 11월 사임

  • 몬티 과도 기술내각 (2001.11)

    나폴리타노(Napolitano) 대통령은 저명 경제학자이자 EU 집행위원을 2차례 역임한 마리오 몬티(Mario Monti)에게 총리직을 제안

    몬티는 2011년 11월 정치인을 배제한 채 기술관료 및 전문가로 구성된 과도내각 출범시키고 국내적으로 재정건전화를 위한 각종 개혁조치를 추진하고 대외적으로 이탈리아에 대한 신인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

    베를루스코니의 자유국민당이 2012년 12월 몬티정부의 경제 부진과 좌파의 영향력 확대를 이유로 몬티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몬티 총리는 사임 의사 표명

  • 레타 대연정 거국내각 (2013.4)

    레타 총리는 중도좌파에서 중도파, 중도우파까지 아우르는 대연정 내각을 구성하였으며, 오성운동을 제외한 주요 정당이 대거 참여

    2013년 2월 총선에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오성운동의 대약진 초래

이탈리아 최근 정세

총선 과반수 확보 정당 부재(2013.2월)

2013.2월 총선에서 민주당 주도의 중도좌파연합이 하원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여 승리했으나, 상원에서는 315석 중 123석 확보에 그쳐 이탈리아 총선 사상 최초로 상원 과반수 확보 정당이 없는 초유의 사태 발생

선거를 이끈 민주당 베르사니(Bersani) 사무총장은 베를루스코니 자유국민당 총재를 배제하고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모색하였으나 기존 정치 세력에 반대하는 오성운동의 거부로 연정 구성에 실패하고 60여 일간 정국 혼란

나폴리타노 대통령 재선(2013.4월)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고령(현재 89세)을 이유로 연임을 고사했으나, 베르사니 민주당 사무총장, 베를루스코니 자유국민당 총재, 몬티 시민선택당 리더 등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요청을 수락하여, 6차 투표까지 간 끝에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재선 대통령으로 취임

렌치 총리의 신정부 출범(2014.4월)

30대 피렌체 시장 마테오 렌치(Matteo Renzi)는 2013.12월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선출된데 이어, 2014.2월 민주당 간부회의에서 이탈리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한 신정부 구성을 요청하여 당내 승인을 거쳐 레타 총리를 하야시키고 총선 없이 새 총리로 취임

이탈리아 헌정사상 최연소(39세) 총리인 렌치의 신정부는 중도좌파 성격을 띄고 있으며, 총 16명의 장관 중 8명이 여성장관으로 이탈리아 역사상 여성장관 비율이 가장 높고, 각료 중 30대 비중이 1/3을 상회

렌치 총리는 경제위기로 생활고를 겪은 시민 및 산업계를 지원하는 즉각적인 경제조치와 함께, 양원제 폐지, 세제개혁, 공공부문 개혁 등 이탈리아의 근본 구조에 대한 개혁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고, 현재 동 개혁을 추진 중

민주당 유럽의회 선거 승리(2014.5월)

    2014.5.25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 결과 렌치 총리의 민주당이 예상 외의 선전으로 승리하였으며(41%), 반 EU·탈 기성정치를 주장한 오성운동(21%),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전진이탈리아당(Forza Italia, 16.8%)을 크게 앞지름으로써 지난 2월 총선 없이 출범한 렌치 정부의 집권 기반이 강화됨

나폴리타노 대통령 사임, 마타렐라 대통령 취임(2015.2월)

2015.1.14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89세)이 고령을 이유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2015.2.3 헌법재판관 출신의 중도좌파 성향의 세르지오 마타렐라가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

젠틸로니 총리의 신정부 출범(2016.12월)

2016.12.4 실시된 개헌 국민투표 부결로 렌치 총리가 사임하고, 외교장관 파올로 젠틸로니(Paolo Gentiloni)가 2016.12월 총리로 취임

콘테 총리의 신정부 출범(2018.6월)

2018.6월 오성운동당-리그당 연정이 포퓰리즘 정부로 부상, 콘테 총리는 루이지 디 마이오(Luigi Di Maio) 오성운동당 대표, 마테오 살비니(Matteo Salvini) 리그당 대표를 각각 부총리로 하는 내각 구성

콘테 총리의 제2기(Conte Bis) 신정부 출범(2019.9월)

2019.9월, 기존의 오성운동당-리그당 연정이 붕괴되고, 새로운 오성운동당-민주당 신연정 공식 출범

드라기 총리의 신정부 출범(2021.2월)

2021.2월, 기존의 오성운동당, 민주당, 이탈리아비바당 등으로 구성된 연정이 내홍으로 재편되고,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前ECB 총재를 신임 총리로 하는 신정부가 취임

마타렐라 대통령 재취임(2022.2월)

2022.1월 1009명의 선거인단으로 실시된 이탈리아 대선에서 759표를 득표한 세르지오 마타렐라(Sergio Mattarella)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2022.2.3부터 두번째 임기 시작

드라기 총리 사임 발표 및 의회 해산(2022.7월)

연정의 한 축이던 오성운동당과 총리간 갈등으로 촉발된 정부내 긴장이 고조되어 의회에서 정부 신임안 표결을 진행하였으나, 정부가 파벌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지를 얻는데 실패하면서, 드라기 총리는 7.21 사임을 발표, 마타렐라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70일 내 조기총선을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