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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1,2차관

제2차관, 한국-헝가리 수교 30주년 기념 포럼(7.26.) 개회사

부서명
지역공공외교과
작성자
지역공공외교담당관실
작성일
2019-07-29
조회수
3075

【인사말씀】
 
문정인 특보님,
장훈 한국정치학회 회장님,
모세 초머 주한헝가리대사님, 가보르 처버 대사님,
오늘 포럼에서 각 세션의 사회를 맡아주실
서대원 대사님, 최아진 연세대 통일연구원 원장님,
발제와 토론을 맡아주실 전문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귀빈 여러분,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이자 황금 같은 휴가시즌에 귀한 시간을 내어 금번 포럼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헝가리의 특별한 인연】
 
올해로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헝가리의 인연은 수교 이전 1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90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군 군의관이었던 가슈파르(Ferenc Gáspár)가 즈리니(Zrinyi)호를 타고 제물포항에 도착한 것이 양국 최초의 만남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1927년 헝가리의 민속학자 버라토쉬(Benedek Baráthosi)가 쓴 책, 「코리아,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통해 헝가리 사람들에게 한국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 초머 대사님께서 이 책의 한국어판을 번역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 책을 찾아봤는데 이미 절판 상태라 구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양국의 남다른 인연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1956년 한국의 한 초등학생이 헝가리 혁명을 보고 함마르셸드 당시 유엔 사무총장에게 헝가리의 자유를 지지하는 탄원서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 소년이 바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이후 시인 김춘수는 헝가리의 자유화 물결을 무력 진압한 소련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를 1957년에 발표하였습니다.
 
2019년 5월, 다뉴브 강에서 33명의 한국인을 태운 허블레아니호가 침몰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헝가리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1명의 실종자를 제외한 생존자와 사망자 전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머르기트 다리 위에서 울려 퍼진 헝가리 시민들의 아리랑과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삼삼오오 든 추모의 촛불은 ‘바람이 거셀수록 연은 더 높이 난다’는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기회를 빌어 이번 사건 수습에 적극 나서준 헝가리 정부와 우리 국민의 인명 손실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해 주신 헝가리 시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를 계기로 양국의 우의가 더욱 돈독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989년 한·헝 수교의 의미】
 
내외 귀빈 여러분,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한국과 헝가리의 인연은 수교에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와 최초로 수립한 외교관계가 바로 헝가리와의 수교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헝가리정부의 글라스노스트와 한국정부의 북방정책, 그리고 정치적 교류보다 앞서 진행되고 있던 경제적 교류는 양국 수교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1988년 여름, 양국 수교를 위한 협상단의 왕래는 당시 ‘푸른 다뉴브강’ 작전이라고 불렸는데, 매우 극비리에 진행되어 한국 협상단이 부다페스트에 입국할 때 단원들 각자가 서로 다른 경로로 들어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8월 26일, 양국은 드디어 상주대표부 설치에 관한 협정을 맺으며 한걸음 더 가까워졌습니다. 약 반 년 후인 이듬해 2월 1일, 한국은 북방정책의 최초의 결실로 헝가리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헝가리와 잡은 손을 시작으로 한국은 구소련(1990.9), 여타 동구권 국가, 중국(1992.8) 등 주요 공산권 국가들과도 마치 릴레이 경기처럼 수교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 노력】
 
당시 북방정책은 주요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라는 결실을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였습니다. 특히 1988년 남북한간 7.7선언은 남과 북이 동반자로서 공동번영을 통해 민족공동체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을 천명하였고,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현재에도 ‘신북방정책’을 통한 유라시아 역내 공동번영과 평화‧안정 추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작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서는 우리의 주도적 노력으로 거스를 수 없는 화해와 평화의 물결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불과 약 한 달 전인 6월 30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미 3자회동이 있었고, 북미 정상이 평화의 악수를 했습니다. 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가장 역동적인 모멘텀으로, 문재인 대통령님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행동으로 사실상의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지향하는 한반도의 평화는 분단국으로서 향유하는 잠정적인 평화가 아닌 항구적인 평화, 능동적인 평화이며, 더 나아가 우리는 한반도를 넘어서 모두를 위한 평화와 공동 번영을 추구합니다.
 
【마무리 : 금번 포럼에 대한 기대】
 
내외 귀빈 여러분,
 
헝가리에는 ‘좋은 나뭇가지는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Jó fának ága idejében virágzik)’는 속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말은 현재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력하면 미래에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이니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나긴 여정에서,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과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오늘 포럼에서 한·헝 양국 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깊은 통찰과 지혜가 모아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한국-헝가리 수교 30주년 기념 포럼’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감사합니다. 쾨쇠뇜(Köszönö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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