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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외교부 브리핑

푸켓 지역 지진해일 피해 관련 백그라운드 브리핑

부서명
작성일
2005-01-07
조회수
2161

 푸켓 지진해일 피해 관련 백그라운드 브리핑

(2005. 1. 7. 14:30-15:10)

 

1. 모두발언

 

1) 초기대응관련

 

ㅇ 현장에 가 보니까 현지에 있는 사람들도 초기에 어느 정도 피해의 규모인지 전혀 몰랐던 거 같음. 전세계가 하루 이틀 동안 잘 몰랐고, 원조 규모 올라가는 것도 전세계가 계속 올라가고 있는 상황, 인류역사상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후에는 한번도 없었던 엄청난 해일이라고 보였음.

 

ㅇ 우리 태국대사관에서는 첫날 바로 홍 영사를 보냈음. 첫날 사태가 번지자 비행기가 없었음. 그래서 외교관들을 위해서 주재국 정부에서 특별히 마련한 항공기 타고 홍영사가 도착해서 즉각적으로 현지의 한인회장과 만나고 앞으로 한인회와 대사관간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협의하면서, 12시경 도착됐었던 거 같은데 새벽 내내, 현지에 32개 여행사가 있는데 이 32개사에 전부 연락해서 우리실종자 명단을 파악할 수 있었음. 결과적으로 두 군데 정도만 그룹투어를 갔었던 것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여행사는 25일 전부 빠져나왔다고 함. 왜냐하면 24일부터 들어가는 투숙객들은 한창 시즌이라 숙박비가 두 배로 비싸져서, 크리스마스 휴일에는 유럽인들이 1년전부터 예약해 놓고 있기 때문에 여행사들이 추천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함.

 

ㅇ 그래서 실종자를 파악해 보니까 나중에 개별적으로 나왔던 세 사람 정도 외에는 초기단계에 다 파악이 된 것임. 그래서 그 범주를 지금까지 벗어나고 있지 않은 상황임. 피피섬에서 부상자들이 푸켓쪽으로 배에 실려오게 되었는데, 이것은 홍영사가 다음날 한인회와 협력하면서, 한인사회의 90%가 여행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쉽게 신속하게 협력이 되었음. 제가 보기에도 그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열심히 했음. 바로 태국대사관에서 김봉주 공사를 비롯해 인원이 그 다음날 보충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것임. 지난번 기본적으로 그 당시 12.30 현재 상황은 대략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이 됨.

 

ㅇ 그 이후 부상자를 병원에 이동시키는 일, 대사관과 한인회가 협력해 12.28 오후 합동분향소를 마련했음. 현장지휘본부가 우선 급하게 한인회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다가 27일 푸켓 도청 건물 앞마당에 각국의 사무실(조그만 책상)로 와서 임시여권을 발급해 주라고 해서, 우리도 거기에 27일 사무실 설치함. 한인회 사무실 빌려 발급하던 임시여권을 그쪽에서 발급하고 신고받았음. 그리고 호텔에 12.28 오전에 현장지휘본부를 세웠음. 그 이틀 후 홍콩이 들어와서 옆방이 세웠고 그 이후 하루 이틀 있다가 일본이 와서 세웠고, 엊그제는 미국대사관이 파견하는 미국사무실이 우리 지휘본부 옆방에 생겼음. 미국의 경우에는 개별여행자가 많기 때문에 실종 명단을 파악하기 어려움. 어느 정도냐 했더니 20명에서 500명 사이다라고 그 범위가 넓었음.

 

ㅇ 카오락 일대는 유럽사람들이 95% 이상임. 우리가 많이 가는데는 피피섬과 옆에 있는 바통비치임. 바통비치는 희생자 없었음. 피피섬에서 들어갔던 사람들중에 실종이 발생했고, 카오락에서 신혼부부 두 쌍이 ... 나중에 예비부부까지 세쌍이 실종되었음.

 

2) 유가족 관련

 

ㅇ 제가 도착하자마자 카오락과 크라비를 가서 유가족을 만났음. 저도 갔을  뿐 아니라, 차관, 윤대사도 가시고 날짜는 달리 이어졌지만 가면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이 유가족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피피섬에서 노숙한 것처럼 되어 있는데, 유가족 13명 중 9명이 카오락 유가족임. 제가 묵고 있던 현장본부가 있던 호텔에 같이 투숙하고, 매일 간담회 하고 지냈음. 유가족에 대해서는 카오락 지역 유가족, 피피섬에서 이송되어 온 사체때문에 크라비 지역 유가족, 이렇게 해서 외교부 직원 1명, 코이카 봉사대원 3명을 각각 붙여서 유가족들의 편의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음.

 

ㅇ 장례식, 합동위령제, 공항 나가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가 전부 참석했음. 나중에는 정부가 이렇게 잘 해줄 줄 몰랐다면서 고마워하고 떠났음. 상당히 헌신의 노력을 저희 나름대로 했다는 점을 말씀드림.

 

3) 실종자, 사망자 수 관련

 

ㅇ 현재 18명이라는 것이 당초 파악을 했던 숫자에서 별 변화가 없습니다만 18명 중 12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사체를 찾았음. 6명에 대한 사체 찾는 일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이 숫자가 거의 변함없이 같은 범주내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한인사회가 전부 여행업에 관여하고 있어서 감각적으로 어떻게 수습할 지 바로 알 수 있었고, 대사관이 그 점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음.

 

ㅇ 현재 18명인데 플러스 알파 있을 거 아니냐, 배낭족, 개인여행자 임시여권 발급하는 과정에서 전부 확인했음. 보니까 현재의 상황으로는 거의 없을 것 같음. 그래서 저희들이 처음에 제가 보고했는데, 20명 내외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마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말씀을 드리겠음. 아체는 제외하고 태국만 말씀드리는 것임. 왜냐하면 배낭족이 피피섬에 숙박하기 어려움. 하루에 300불 이상 되기 때문에 숙박하기 어려웠다는 사실도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음. 카오락지역은 원래 한국사람들이 여행을 잘 안가는 지역이라고 함. 최근에 몇 달전부터 한국여행으로서 개발하는데 워낙 비싸서 방갈로가 최하가 300불이라고 함. 그래서 숫자가 적었음.

 

4) 피피섬 상황 관련

 

ㅇ 피피섬은 사태가 발생하고 한 달 동안 공식적으로 출입 통제하고 있음. 허가를 내주지 않음. 일부 가신 분 들이 있다 해서 확인해 봤는데, 기자분들 중에 확인에 의하면 두 번 그런 적이 있었음. 정식으로 허가받은 것이 아니고 통통배로 돈을 더 주면 가는 모양임.  KBS에서 '추적 60분'이 가족 한 분과 같이 갔었다는데 그것은 사실인 것 같음. 그 외 가족들 갔다는 흔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음. 우리 구조대가 안갔다고 하는데,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허가를 받아가지고 국제구조대는 허가받아서 들어가고 있고 일본구조대도 들어가고, 우리 119구조대가 피피섬에 가서 2일동안 일을 했음. 대사관이나 외교관으로 들어간 사람은 한 사람은 없다고 함. 구조대는 15명이 다 들어갔음.

 

5) 현장지휘본부 운영 및 사체보관방법

 

ㅇ 한인사회에서 말씀드렸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축소 운영하기로 하고 유가족들이 우리가 떠나기 하루 전날 밤에 다 가셨고, 기자분들도 한때는 50명에 가까운 기자분들이 계셨다가 거의 다 나가셨음. 축소 운영해도 되겠다 생각해서 나왔음. 지금 이 시각에도 진명표 한인회장을 중심으로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음. 부상자 실종자 케어, 사망자 장례식에도 헌신적 노력하고 있고, 한인회와 대사관이 한 가족이 되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분들의 열심히 하는 봉사정신도 중요한 일이고 우리 한인사회는 인명피해가 하나도 없었다고 함. 여행업을 주로 하는데 이 기간 동안 여행업이 사실상 끊겨있으니까 시간적인 여유도 있어서 아주 열심히 대사관을 돕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저희들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그제는 바통비치에 가서 복구작업에 참여했는데 200-300명이 가서 청소를 같이 했던 것 같음.

 

ㅇ 현장지휘본부는 어제 저희들이 나왔기 때문에 태국 김봉주 공사가 현장지휘본부 맡고 있음. 대사관 직원 여러명, 마침 태국에는 코이카 봉사단원 80명 정도 가 있는데, 우리가 그중에 보통때 쓰기는 어려우나 봉사정신에도 맞고 해서 그들중에서 여러명 썼었는데, 이번에 마지막으로 7-8명 정도 더 남겨 놓고 나머지 복귀를 시켰음.

 

ㅇ 앞으로 할 일이 여러가지 있습니다만 미확인 된 분, 실종자의 사체를 찾는 문제가 앞으로도 계속 돼야 될 부분이고, 현재 상황으로서는 사체가 너무 오래되어서 지문이 더 안나온다고 함. 그래서 남은 방법이 DNA 확인을 하는 방법인데, 태국정부에서 시체 한구 한구당 DNA를 전부 확인해서 컴퓨터에 입력시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음. 우리도 지금 실종자 가족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나간 법의관에게 위임장을 써놓고 법의관이 유가족 대상으로 신체특징에 대한 앙케이트를 조사해 그 자료를 토대로 확인작업에 들어갈 것이고, 국내에서도 원하는 분 DNA 검사해야 되겠다는 분들이 계시면 국내에서 데이터 가지면 바로 확인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함

 

ㅇ 일부 신문에 나온 사체 보관방법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는데, 저도 카오락, 크라비지역 다 갔는데, 제가 갔을 당시에 카오락지역도 사체가 여러 군데 많이 널려 있었음. 크라비지역은 피피섬에서 계속 이송해 오는 사체가 당시 200여구가 마당에 있었고, 카오락지역의 사체들은 수천구를 절에 보관을 해 놓고 있었음. 당초에는 병원에도 냉동고가 거의 없었음. 푸켓 전 시내에 냉동고가 30-40개밖에 없었다고 함. 그 정도로 냉동고가 부족한데 그 이후 시간 지나면서 냉동컨테이너를 구해서 절에 냉동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절 마당에 있었던 사체들 냉동컨테이너에 집어넣고, 어제 우리 신문에도 잠깐 나왔습니다만, 영국 신문을 인용해서 얘기했는데 암매장 얘기 있었는데, 그것은 암매장 개념보다는 시체를 밖에다 내놓으면 사체 금방 상하므로, 신체의 일정 부위를 남겨놓고 흙 속에 가매장한다고 함. 나중에 냉동고가 비면 보관하고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함. 일부에서 얘기하는 암매장은 아닌 것으로 보임.

 

ㅇ 지휘본부는 계속 유지할 것이고, 태국 정부에서 DNA 관련해서는 외국에 인포밍 프로세스 한 다음에 가족으로부터 정황, 데이터를 모으고 데이터베이스 프로세스 해서 사체를 확인하는 작업, 사체가 확인이 되면 유족에 돌려주는 방법, 이것은 DNA 뿐만 아니라 일반 육안으로 확인하거나 지문 방식에서도 이런 절차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음.

 

ㅇ 부상자에 대한 병원비, 치료비문제는 태국의 윤대사가 태국정부와 여러번 교섭하기도. 태국정부가 일체 치료비를 부담하기로 했음. 우리대사관에서 부상 당해서 병원에 있다가 나가는 분들은 대사관에서 보증하고 퇴원시키고 있음.

 

ㅇ 그 동안 여러 가지 오해, 일부 언론의 비난적인 요소 보도도 있었습니다만 현장에 가보면 상황이 워낙 엄청난 상황이고, 부상자 막 들어오니까 일일이 한 사람 한사람에 대해서 충분히 배려하기 쉽지가 않았던 상황이었음. 그것을 이해 해주시고, 저희 대사관을 토대로 해서 본부에서 가서 현장지휘본부를 했습니다만, 현장지휘본부에서는 저희들 할 수 있는 최대한 노력을 했고, 잠을 많이 안 잤음. 열심히 했다는 거 말씀드리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하려 노력했음. 유족들도 했고, 계시던 기자분들도 상당히 고맙게 여기고 갔다는 것을 말씀드림.

 

ㅇ 병원도 유가족들에게 우리직원 한사람을 팀장으로 코이카 봉사단원 3명씩, 가족당 한명씩 붙어서 도와드렸는데, 병원에도 우리직원과 코이카 봉사단원을 상주시켰음. 두서는 없었습니다만 이런 정도 말씀드림.

 

2. 질의 응답

 

문) 며칠 계셨는지?

답) 8박9일, 29일 갔었으니까.

 

문) 최대 희생자를 20명 정도로 보신다고 했는데?

답) 우리가 보는 것임.

 

문) 전체 보면 최대 몇명까지 개략적인 숫자 나올 거 같은데?

답) 오늘도 소재 미확인자 숫자를 알려드렸지만, 계속 줄고 있는데 소재미확인중에서 추가 희생자가 나올 직접적인 연관성이 발견된 것은 하나도 없음. 그래서 지금 이 단계에서 태국에서 예정하고 있는 20명 전후 보다 다른 지역에서 더 급격하게 많은 수의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 발견하지 못했음. 그러나 최종적으로 희생자 몇 명이고 희생으로 연결될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분들이 몇 명이다라는 것은 아직도 숫자가 줄고 있기 때문에 며칠 더 기다려 봐야 된다는 생각임.  

 

문) DNA 부분, 현재 우리 나라에 있는 사람중에 의심되는 사람이 DNA를 희망 받고 있나?

답) 지금 희망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DNA 채취해서 데이터베이스화 하는데 시간이 걸림. DNA 자료를 채취하게 되면 DNA와 대조해 보면 나올 수도 있음.

 

문) 데이터베이스 절차는?

답) 태국측도 자기들이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DNA 데이터베이스 하고 있는데,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태국정부에 물어놓고 있음. 태국쪽에서 절차가 어떻게 된다는 것이 오면 구체적인 절차를 안내 해드릴 것인데, 아직 준비가 안된 것임. 일단 그런 가능성도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지만 구체적인 절차가 어떻게 되고 뭐 보내느냐 하는 것은 아직은 태국측 사정으로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말씀드림.

 

문) 가매장 외신보도에 대한 태국 정부의 입장은?

답) 더 타임즈에 보면 태국측 입장이 다 나와 있음. 간단히 말하면 보관 방식의 한 옵션임.

 

문) 가매장 했다가 친척이 나타나서 다시 파낼 경우 기록들이 훼손되기 쉽다고 기사에 되어 있는데?

답) 데이터베이스를 하기 위해 지금 움직이고 있음. 밖에 내놓으면 더 빨리 훼손됨.

 

문) 생사확인을 위해 태국에 내 가족 찾기 위해 가 있는 분들은?

답) 없음.

 

문)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

답) 우리한테 신고 들어온 것 하나도 없음. 이미 언론에 신고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줬는데 신고 들어온 것이 없음. 제가 29일 비행기 타고 가는데 이름은 확인할 수 없지만, 실종됐다고 해서 어떤 분이 타고 갔는데 가다가 대한항공을 통해 찾았고 그분은 가기는 갔는데 바로 찾았음. 또 배낭여행족 때문에 현장본부에 자기 아들 찾으러 세분이 오셨음. 이 분들은 푸켓에 여행 온 게 아니고 치앙마이에 4명이 친구가 되어 여행하고 있는데 거기서 통화가 됐음. 그 외에는 추가로 실종신고를 해 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음. 대장이 있는데 한 사람 정도가 있는데 불확실하게 얘기하는 분이 있었던 같고 그 외에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분은 한분도 없었음.

    제가 그런 과정 보면서 만일 절실한 분 같으면 자주 연락올 텐데 그런 것이 없었고 현지에서 상황을 읽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실종자로서 추가 발견될 발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함. 여행업자로서의 육감, 또 이 사람들이 개인여행자한테 여권 내주면서 누구 누구하고 있었느냐 다 물어서 체크해 보니까 상당히 극소수거나 희박하다는게 저희 판담임.

 

문) 아까 20명으로 예상했던 게 지금 공식 실종 사망 18명 포함인가?

답) 18명에 플러스 알파 해도 20명 내외가 되지 않겠는가 판단함 것임. 30일 아침에 새벽에 회의에서 그렇게 판단했는데 그 이후 변화가 없음..

 

문) 지금 소재 미확인자를 공개하는 것이 소재미확인 숫자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 아닌지 ?

답) 연락을 하고 있음.

    그렇게 확인이 되었는데도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 거의 없음. 우리 직원들이 확인 계속하고 있음. 명단을 공개하는 것에 실익은 없다고 봄. 가족들과 긴밀히 연락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에 명단을 공개해서 이익이 있어야 되는데 이익이 없다고 판단함.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고, 밖으로 얘기 못할 부분도 있는 사람도 있고 명단 공개는 상당히 조심스러음. 사망 실종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임.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고

 

문) 거기서 느끼실 때 왜 자꾸 외교부가 늑장대응으로 욕을 얻어먹는지. 현장에 가셔서, 이를 테면 제일 실종자 많은 나라가 스웨덴 경우 2,000여명 갔는데 거기서의 영사시스템이 우리와 상황이 똑같은 데, 그 사람들 하는 것과 비교했나?

답)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도 모든 체제가 늦었음. 우리는 바로 가서 처음에는 26일 사고 발생하고, 27일 오전까지는 한인회 사무실 빌려서 영사가 활동하고 있었고, 27일 푸켓 도청 앞 광장에 오후에 임시영사 사무실 설치했는데, 그러다보니 오전에 생환해 나온 분이 비판적인 말씀했는데, 도청앞 가보니 없더라 했다는데, 도청에서 우리가 연락받은 것이 점심무렵이었던 같음. 바로 가서 설치했는데 설치하기 전단계에 그 분이 한인회로 왔다고 함. 그 때 한인회 간부가 죽은 사람도 천지인데 산 사람이 이것도 못참느냐라고 했었던 같음. 화가 나니까 그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바로 27일 아침부터라도 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고, 부상자에 대해서 케어 못했다는 것도 27일 일인 것 같음. 27일은 우선 우리가 사람이 없었음. 27일 증파해서 사람을 보냈는데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한인회 사람을 많이 동원해서 - 자발적으로 일했지만 - 이분들이 돌봐주었음. 체제를 완전히 갖춘 게 27일 오후인데, 현장에 간 기자들은 다 충분히 이해하고 잘 했다고 하는데, 호텔내에 지휘연락본부를 제일 처음 들어갔기 때문에 제일 좋은데 자리잡고 기자실도 마련할 수 있었음. 그 이후에 홍콩, 며칠 있다 일본, 그제는 미국이 들어옴. 미국은 방이 없어 우리 옆방의 골방 같은데 있음.

    우리 대사관 나름으로 당시 초기대응을 잘 했던 것 같음. 워낙 부상자들은 초기 단계 사람이 많아서 일일이 개별적인 케어를 할 수 없었던 것임. 그리고 의료시설이나 이런 것이 우리나라 같지 않고, 거기다 날씨 덥지, 냉동시스템이 안좋고 그런데서 생기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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